로스쿨은 실패한 것은 맞는데 중요한(?) 실패작은 아니라고 봅니다.
- 작성일
- 12-02-07 21:09
뭐 까놓고 말해서 사법시험 친다고 가난한 합격자가 많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사법시험을 유지해도 당연히 서울대 법대가 압도적인 비율일테고 서울대에 갈 친구들 중에 서민, 빈민, 차상위 계층이 몇명이나 될까요. 그런 문제는 로스쿨에서 의무적으로 저소득층 쿼터를 배정하거나 장학금 비율을 강제해버리면 오히려 더 합리적으로 해결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이 왜 고시제도를 폐지하고 싶었는지 이해는 가는게 고시제도를 통해 뽑히는 엘리트 충원 방식이 마음이 안 들었을 겁니다. 다들 서울대인데 자기 혼자 서울대 법대가 아닌 노무현이 겪은 고초가 컸을 건 보이거든요. 하지만 그게 대다수 국민에게 시급한 문제는 절대로 전혀 아닙니다. 또한 로스쿨 나온다고 지방대 학생이 서울대 로스쿨 갈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진영에서 로스쿨을 찬성한 것은 현실을 모르고 시작한 일에 불과합니다.
전 애초에 법조개혁 자체도 그렇게 중요한 과제도 아니었다고 보고요.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심지어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파 정리도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까놓고 말하면 저는 이런거는 무조건 후순위 과제라고 봅니다.
이런 것들은 전부 민주당이라고 부르건 민주통합당이던 열린우리당이던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서민들의 구체적인 삶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들이 아닙니다. 사법시험이냐? 로스쿨이냐 하는 얘기도 서울대 법대나 고려대 법대, 아니면 경북대 법대 정도라도 간 똑똑한 친구들에게나 의미가 있는 얘기라고 봅니다. 동네에서 조그마한 장사하고 자식은 전문대 다니는 그냥 평균적이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권자들에게는 둘 다 자기하곤 거리가 먼 엘리트들만의 얘기들일 뿐입니다. 의대를 의전으로 바꾸던 말던 하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의대고 의전이고 아무나 갑니까. 역사학자, 운동가들에게는 친일청산이 일생의 목표일지 몰라도 월전세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아요. 3.1절에나 관심이 갑니다.
지난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 인터넷에서 너무 목소리만 큰 '자칭 개혁세력'의 취향에만 맞는 헛짓을 한 겁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세금은 안나가서 부담은 별로 없고 그러면서 폼 잡을 수 있는 문제에는 집착이 너무 큽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질 않고 먹고사니즘이라고 폄하하는 닭짓도 서슴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저런 문제만 좋아하고 저런 걸로 정쟁화가 되어서 대결구도가 되는 것을 오히려 즐깁니다. 하지만 서민에게 그것은 지루하고 짜증나고 자기들의 문제는 전 해결되지 않아 정치 혐오만 초래합니다.
검찰개혁도 그렇습니다. 검찰개혁 좋긴 좋지요. 그런데 그게 정권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거나 책까기 써가면서 필생의 업적으로 여길만한 것이냐고 보면 전혀 아니라고 보고요. 지금 이 시기에 이런 한가한 것에 집착하는 분들은 진짜 뭐잡고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반인들은 검찰개혁 하던 말던 그게 중요하지가 않아요. 이른바 권력기관을 개혁해야 한다면 차라리 경찰개혁이 더 중요할 겁니다. 일반인들 중에 대검중수부, 중앙지검 특수부, 중앙지검 공안부에 엮일 분들이 많던가요. 하지만 경찰은 사정이 달라집니다. 검찰개혁이라고 길고 길게 외쳐봐야 그거 검찰권축소라는 다섯글자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검찰을 개혁하면 당연히 경찰의 힘은 커질 겁니다. 제가 보기엔 대다수 서민들은 경찰들의 힘이 커지는 것이 더 싫을 겁니다.
과거사 청산, 친일파 단죄도 나름대로 가치가 큰 일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역시 명운을 걸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국개론 같은 헛소리만 놓고 보면 유권자들은 상당히 정확한 면이 많습니다. 에컨대 4대 개혁법안 중 사학법에 대해서는 대중적인 지지도가 상당했습니다. 이건 서민들에 체감할 개혁이거든요. 문제는 사학법을 포기하고 로스쿨을 만든 거지요. 아마 사학법은 표가 안나지만 로스쿨은 만들면 태가 바로나기 때문에 대통령이던 그 밑의 참모들이던 무언가 남기고 싶어서 그렇게 선택을 했다고 하는게 정답이지요.
그리고 이런 개혁들을 가지고 개혁을 하려는게 아니라 너는 수꼴이고 나는 역사의식의 담지자라고 판을 짜서 정쟁을 하려고 한 것도 패착입니다. 그렇게 안 했으면 오히려 잘 됐을 겁니다. 예컨대 친일파 청산만 해도 한나라당 지지자들이라고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친일파 청산을 통해 독립운동당 열린우리당 친일파당 한나라당이라는 구도를 가지고 싶어한게 오히려 성과를 안 나오게 만든거죠.
이번에 야권이 정권을 잡으면 무엇보다 신경써야 할 것은 이런 사회문화적, 정치적 개혁이 아니라 국민들의 실제 삶에 다가서는 개혁이어야 되지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국민들에게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아야지 이런 개혁도 하고 그런 거지요. 검찰개혁이건 법조개혁이건 그런 권부와 싸우는데 정권이 인기가 없으면 됩니까. 실질적 문제는 뒤로 두고 이런 것만 붙들고 있으면 서민들은 지치고 짜증내면서 떨어져나가고 남는 것은 인터넷에서 국개론을 외치는 골수들 밖에 없어요. 그러고는 먹고사니즘 때문에 졌다. 서민들은 멍청하다 하는 헛소리나 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