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 혹은 교감
- 작성일
- 11-01-03 04:26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약 8~9년 전 국내 최대의 무속인 커뮤니티 운영자 노릇을 했었습니다
(당시엔 카페니 뭐니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자체가 지금처럼 왕성할 때가 아니었으니, 최대라기보단 거의 유일한 곳이긴 했죠)
제게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이래저래 맺은 인연을 이어가다 보니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막연한 경외심' 같은 것이 저에게는 없다는 것을
저와 그들이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참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었죠
(태생적으로 단합이 불가능한 그들의 특성 때문에) 결국 와해되고 말았지만요
우야둥둥
오늘 술을 좀 마시고 대리를 불러 집에 오는데
기사님이 철학관을 운영하시는 분이더군요 (신을 받은 분들과는 다른 부류입니다)
저와 그런 분들과는 두어 마디 정도만 주고받으면 대화에 불이 잘 붙습니다
암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왔습니다
(그런 대화 나누는 게 좀 귀찮기도 해서, 요샌 주로 그냥 듣기만 하는 편입니다)
거의 도착할 즈음에
저의 새해 운세를 좀 봐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 운세는 제가 못 보죠" 라고 대답하십니다
봐봤자 제멋대로 합리화시킬 거란 걸 아신다는 뜻이죠. 그게 반 이상은 사실이고요
도착한 다음에 컵홀더에 꽂혀 있던 2만원을 드리며
"이거, 오늘 저랑 술 먹던 사람이 대리비하라고 준 돈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그대로 다 주셔야 하는 것도 아시겠네요?" (원래 요금은 1만 5천원입니다)
"물론이죠" 하며 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가시기 전에 수줍게 명함 한 장을 건네주시네요
"갑갑한 일 생기면, 여기 적힌 번호에 문자메세지로 사주 적어 보내세요"
받아들고 보니, 사진이 박힌 명함입니다
멀어져가는 도사님을 향해 제가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사진 보니 장수하시겠네요~" (물론 무리수 던진 거죠. 건강하시라는 새해 인사일 뿐이니까요)
"고맙습니다. 하하하하하~" 하며
기사님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공짜 신년운세 쿠폰 하나 생겼네요 ㅎ
자고 일어나서 문자 보내야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