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거울님글에 대한 반론
- 작성일
- 11-12-11 03:04
아래 김거울님이 저와 관련된 글을 올려주셨더군요.
http://www.baseballpark.kr/bbs/board.php?bo_table=bullpen2&wr_id=1079901&page=3
이와 관련해서 논란을 계속 지속시키는게 좋은가라는 의문이 들기는하지만 일단 구체적으로 저를 지칭하셔서 글을 쓰셨기에 저로서는 반론을 몇자 적지 않을수 없더군요. 이에 몇자 첨언해 봅니다.
좌파시니, 마르크스 이야기를 해보져. 전에 썼던 것처럼 여름에 자본론을 집에서 가져왔고 조금씩 읽는 중입니다. 근데 이 책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self-contained.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그의 저작을 볼 필요가 크지 않다라는 데 있겠네요. 그가 자신이 정의한 용어 내지는 경제학에 익숙하지 않으면 모르는 많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해놨기 때문에 책이 무척 길어집니다. 따라서 그의 자본론은 어려운 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해가능하고 친절한 책입니다.
이 구절에서 김거울님은 맑스의 자본론을 "이해가능하고 친절한 책입니다"라고 쓰셨더군요. 네 맞습니다. 맑스의 자본론은 맑스가 의도한 것처럼 "노동자도 보고 이해할 수있게"쉽게 쓰려고 한 책이기에 분명 쉽게 읽힐 수 있습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랄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같은 난해한 철학서에 비교하면 분명 상대적으로 평이한 문체인게 사실이죠. 적어도 맑스의 <자본론>을 단순히 경제학서적으로만 독해한다면 말입니다.(이것도 사실 절대 쉽다고는 말 못할 겁니다. 김거울님은 쉽다고 느끼셨어도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일반인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때문에 맑스의 <자본론>이 쉬운가 아닌가는 어디까지나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맑스의 <자본론>이 단지 경제학 혹은 정치경제학책으로만 독해가능하였다면 그 책이 후대에 그토록 자주 인용되고 독해되고 거론되는 고전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맑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맑스가 사용하였던 추상방법이나 서술방법, 철학적 배경등등을 이해해야합니다. 예를들어 자본론 1장인 상품을 이해하려면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정확히 말하자면 헤겔변증법에 의한 방법론은 자본론 1,2,3권에 걸쳐서 수행되고 있다고 해야겠지만요) 맑스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헤겔변증법혹은 철학은 맑스의 서술방법이나 추상방법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이 뿐만아니라 맑스가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알려면 그의 역사관(다시말해서 사적유물론)을 이해해야하는데 이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자본론>만 독해해서는 난망하고 맑스의 이전 저작들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공산당 선언>이랄지 <독일이데올로기>랄지 하는 저작들인데 이 저작들은 물론 김거울님처럼 <자본론>을 현상적으로 독해하기위해서는 굳이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지만 맑스가 <자본론>을 서술했던 문제의식과 행간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반드시 읽지 않을수 없는 저작들이죠. 이는 또 무엇을 의미하냐면 맑스의 <자본론>을 사회, 정치적 저작으로 독해가능함을 의미하죠.
이처럼 맑스의 <자본론>은 다양한 경로로 독해해 낼 수 있는 저작입니다. 그리고 그 독해를 바탕으로 또 다양한 맑스주의분파들이 갈라져 나오기도 하죠. 예컨대 알튀세는 <자본을 읽자>라는 책을 쓴바 있는데 이들을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자라고 부르죠. 또 짜골로프같은 분이 쓴 <정치경제학 교과서>라는 책은 전형적인 구소비에트식 <자본론>이해를 대변하는데 이러한 이해가 구소비에트식 사회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기도 했죠. 또 안토니오 네그리는 <맑스를 넘어선 맑스>라는 <자본론>과 <Grundtrisse>를 분석하는 책을 써서 소위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를 구상하기도 했죠.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인 가라타니고진은 초기에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도 결국은 맑스의 <자본론>을 어떻게 이해할것인가와 관련되는 책입니다. 후기의 대표작인 <트랜스크리틱>도 결국은 칸트철학과 맑스의 <자본론>을 이동비평(트랜스크리틱)하기 위한 저작이고요. 한국의 예를 들자면 이진경도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란 책을 써서 소위 이진경주의라는 호칭을 획득?하기도 했었죠. <자본(론)>은 이처럼 잠재적 해석의 다양성이나 풍부함으로 넘쳐나는 책입니다. 김거울님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쉽게"이해하는 것도 한 방식입니다만 알튀세나 안토니오 네그리 혹은 가라타니 고진처럼 쉽지않게 이해하는 경로도 많다는 것이죠. 맑스의 <자본론>이 인류사의 고전이랄 수있는 이유가 바로 이 해석의 다양성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punk님의 글은 제게 있어서 더 어렵습니다. (다만 이 글과 관련해 쓰신 글은 이해하기 좋은 글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이해하고 나서 소통하기 위한 글을 적을 수가 있지요.)글의 길이는 제게 상관이 없습니다. 읽는데 오래 걸리는 책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제가 모르는 용어가 너무 많습니다. 인터넷으로 용어뜻을 찾아가며 읽어야 할 지경이죠.
김거울님이 제 글은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만 제가 보기에 제 글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전문용어?를 많이 써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문장이 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이나 문장자체가 삐걱꺼리고 걸리적 거려요. 한마디로 글을 못쓴다는 이야깁니다. 베팍의 다른 많은 문장가분들의 유려한 문체에 비하면 저는 딱히 저만의 "문체"랄만한 특징이 없어요. 좋은 글이라면 일단 그 글의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문장자체가 유기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글은 유기적이기는 커녕 뒤죽박죽에다가 종종 문법적으로 틀리기조차 하죠. -_- 일단 이런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용어부분은 그렇습니다. 김거울님이 양자역학을 서술하는데 동원되는 수학,물리학 용어의 예를 들어주셨는데 수학이나 물리학의 용어와 철학이나 인문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예를들어 삼각부등식, 연산자 등등을 이해하려면 이와 관련되는 수학지식을 배경으로 깔지 않으면 안됩니다. 푸리에 급수랄지 미분방정식등등을 모르고 양자역학을 (상식적 차원이 아닌)수학적 차원에서 이해할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와달리 인문학적 개념어등은 손쉽게 인터넷 검색등으로 찾아볼수있습니다.(물론 더 바람직한 것은 그와 관련된 책을 독해하는게 더 바람직하긴 하지만요) 예를들어 브레히트의 "소격효과estrangement effect "라는 용어를 봅시다. 검색하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598 바로 이렇게 뜹니다. 이 설명이 완벽한 설명은 안됩니다만 몇 줄 안되는 짧은 설명만으로도 대강의 개념이해는 가능하죠. 인문학은 전에도 이야기한적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일상언어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비록 생소한 몇몇 표현들이 나오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해할수있습니다. 때문에 접근성이라는 면에서 수학이나 물리학과는 비교하기 힘들죠. 제가 얼마나 자주 "소격효과"같은" 어려워 보이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서 찾아보면 얼마든지 개요정도는 파악가능한 것들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인문학(철학을 포함해)은 어렵지 않습니다. 김거울님 <자본론>을 쉽다고 느끼신 것처럼요. 물론 그것도 심층적으로 파고들면 또다른 영역이 되긴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파인만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도 큰 틀에서 동의합니다. 파인만 같은 분은 양자전기역학QED를 정식화해서 유명한 분인데 이 과정에서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한 일종의 "그림"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죠.
이런 그림인데 수식으로만 표현하기보다는 이러한 그림으로 설명함으로써 (직관적인) 양자이론의 이해에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압니다.(수학에는 이처럼 종종 그림으로 설명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가능 한 경우가 있습니다. 집합론에 등장하는 밴다이어그램도 그 한 예죠)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라는 책도 써서 물리학전공하는 학부생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고요. 네 맞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없다면 그것에 대해서 100%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표현은 저도 일부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능하다면 보다 알기 쉽게 이해할 수있는 유려한 문체와 대중적 화법으로 소통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것이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는 글이라면요. 그러나 이 소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호이해에 기반합니다. 전문가들이나 인문학적 훈련이 된 독자들만 이해될 수있는 난해한 글도 소통에 문제가 되는 일방통행이지만 거꾸로 일방적으로 쉬운 글도 대중들에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의 게시글에도 이야기했듯이 쉬운글자체가 지나친 단순화로 인한 과도한 언어적 폭력이 될 수있기 때문이죠. <현대 일본사상>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디까지나 명쾌함과 경쾌함을 몸에 두른 아사다(아키라)에 비해 하스미(시게히코)는 전략적 난해함을, 가라타니(고진)은 분명하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명쾌함에서 멀어져 가는 역설적인 어려움을(본인의 의도와는 별개로?) 매력적으로 체현하고 있습니다"(<현대일본사상> 120쪽) 저자인 사사키 아쓰시는 이 책에서 현대일본사상을 논하기 위해 앞서 말한 아사다 아키라, 하스미 시게히코, 가라타니 고진 등등의 사상을 비교분석하는 과정에 저와같은 이야기를 한 것인데요. 이들 중 아사다 아키라는 80년대 이후의 일본현대사상을 논하면서 "모든 것은 <구조와 힘>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저자가 말할만한 바로 그 책 <구조와 힘>(한국어 제목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을 쓴 사람입니다. 책을 읽어보시면 느끼실수 있지만 이책의 서술방식은 사사키 아쓰시가 말한바처럼 명쾌합니다. 그래서 마치 독자들로 하여금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구조)주의에 대해서 "쉽게"이해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죠. 일본 사상계 혹은 독서계에 소위 "뉴아카데미즘'이라는 신조류를 형성케 할 만큼.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그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피상적 이해에 불과했다는 평가지요. 이는 단지 아사다 아키라의 문체만을 이야기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 사상사 전반에 대한 평가에 더 가깝긴 하지만요. 이와는 반대로 하스미 시케히코같은 평론가는 데리다 사상을 그대로 수행한 것과 같은 해체적 에크리튀르를 보여주는 문체를 구사합니다. 다시말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이와 비교해서 가라타니 고진은 "분명하게 하려고 하면 명쾌함에서 멀어져가는" 저자라 할 수 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읽어보면 이 표현이 매우 정확하다고 느낄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일단 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쉽게 읽힙니다. 자크 데리다나 하스미 시케히코처럼 이중삼중의 중첩적인 반성적 차원을 동원한 글쓰기가 아니라 짧고 분명한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때문에 얼핏 쉽다고 느껴지지요. 그러나 이 문장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 표현이 나오게된 맥락속에는 간단치 않은 사상의 계보학이 숨어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있습니다. 그만큼 해석 자체가 현상적으론 쉽게 표현되었지만 현상의 이면에 간단치 않은 본질과 구조가 숨어있는 문체라는 것이지요. 마치 앞서말한 맑스의 <자본론>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 맑스도 그렇지만 가라티니 고진이 문체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서술한 이유는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되도록 하기위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배려가 또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낳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어려운 문장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어떻게보면 차라리 데리다나 하스미 시게히코처럼 해체론을 설명하기 위해 그 해체론을 수행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그 중첩적이면서 난해한 글쓰기가 해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말해 "쉬운" 글들일수 있다는 것이지요.(데리다 스스로도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기 위해) 상세히 서술하려 하였다"말한바 있습니다만 그런 친절함이 데리다의 문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난해함으로 다가왔던 것이죠. 그러나 그의 글쓰기 전략과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그러한 해체적 글쓰기는 충분히 이해/독해가능한 글쓰기의 실천 일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예상보다 다소 장문 글이 되어졌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다시 말씀드리자면 소위 "쉬운 글"을 쓴다는게 말처럼 "쉽게"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자측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글이 "쉽게" 읽힌다고 해서 그 글이 온전히 이해되었는가 하는 면에서는 또 다른 반론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글이 쉽게 읽히는 것은 약 일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플라톤이 이야기한 파르마콘처럼 말이지요. (철학자로서 진중권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파르마콘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 글을 참조하세요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62364 )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에는 앞서도 지적했다시피 소위 "소통"이라는 것에는 아포리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http://www.baseballpark.kr/bbs/board.php?bo_table=bullpen2&wr_id=1079901&page=3
이와 관련해서 논란을 계속 지속시키는게 좋은가라는 의문이 들기는하지만 일단 구체적으로 저를 지칭하셔서 글을 쓰셨기에 저로서는 반론을 몇자 적지 않을수 없더군요. 이에 몇자 첨언해 봅니다.
좌파시니, 마르크스 이야기를 해보져. 전에 썼던 것처럼 여름에 자본론을 집에서 가져왔고 조금씩 읽는 중입니다. 근데 이 책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self-contained.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그의 저작을 볼 필요가 크지 않다라는 데 있겠네요. 그가 자신이 정의한 용어 내지는 경제학에 익숙하지 않으면 모르는 많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해놨기 때문에 책이 무척 길어집니다. 따라서 그의 자본론은 어려운 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해가능하고 친절한 책입니다.
이 구절에서 김거울님은 맑스의 자본론을 "이해가능하고 친절한 책입니다"라고 쓰셨더군요. 네 맞습니다. 맑스의 자본론은 맑스가 의도한 것처럼 "노동자도 보고 이해할 수있게"쉽게 쓰려고 한 책이기에 분명 쉽게 읽힐 수 있습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랄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같은 난해한 철학서에 비교하면 분명 상대적으로 평이한 문체인게 사실이죠. 적어도 맑스의 <자본론>을 단순히 경제학서적으로만 독해한다면 말입니다.(이것도 사실 절대 쉽다고는 말 못할 겁니다. 김거울님은 쉽다고 느끼셨어도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일반인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때문에 맑스의 <자본론>이 쉬운가 아닌가는 어디까지나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맑스의 <자본론>이 단지 경제학 혹은 정치경제학책으로만 독해가능하였다면 그 책이 후대에 그토록 자주 인용되고 독해되고 거론되는 고전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맑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맑스가 사용하였던 추상방법이나 서술방법, 철학적 배경등등을 이해해야합니다. 예를들어 자본론 1장인 상품을 이해하려면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정확히 말하자면 헤겔변증법에 의한 방법론은 자본론 1,2,3권에 걸쳐서 수행되고 있다고 해야겠지만요) 맑스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헤겔변증법혹은 철학은 맑스의 서술방법이나 추상방법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이 뿐만아니라 맑스가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알려면 그의 역사관(다시말해서 사적유물론)을 이해해야하는데 이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자본론>만 독해해서는 난망하고 맑스의 이전 저작들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공산당 선언>이랄지 <독일이데올로기>랄지 하는 저작들인데 이 저작들은 물론 김거울님처럼 <자본론>을 현상적으로 독해하기위해서는 굳이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지만 맑스가 <자본론>을 서술했던 문제의식과 행간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반드시 읽지 않을수 없는 저작들이죠. 이는 또 무엇을 의미하냐면 맑스의 <자본론>을 사회, 정치적 저작으로 독해가능함을 의미하죠.
이처럼 맑스의 <자본론>은 다양한 경로로 독해해 낼 수 있는 저작입니다. 그리고 그 독해를 바탕으로 또 다양한 맑스주의분파들이 갈라져 나오기도 하죠. 예컨대 알튀세는 <자본을 읽자>라는 책을 쓴바 있는데 이들을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자라고 부르죠. 또 짜골로프같은 분이 쓴 <정치경제학 교과서>라는 책은 전형적인 구소비에트식 <자본론>이해를 대변하는데 이러한 이해가 구소비에트식 사회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기도 했죠. 또 안토니오 네그리는 <맑스를 넘어선 맑스>라는 <자본론>과 <Grundtrisse>를 분석하는 책을 써서 소위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를 구상하기도 했죠.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인 가라타니고진은 초기에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도 결국은 맑스의 <자본론>을 어떻게 이해할것인가와 관련되는 책입니다. 후기의 대표작인 <트랜스크리틱>도 결국은 칸트철학과 맑스의 <자본론>을 이동비평(트랜스크리틱)하기 위한 저작이고요. 한국의 예를 들자면 이진경도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란 책을 써서 소위 이진경주의라는 호칭을 획득?하기도 했었죠. <자본(론)>은 이처럼 잠재적 해석의 다양성이나 풍부함으로 넘쳐나는 책입니다. 김거울님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쉽게"이해하는 것도 한 방식입니다만 알튀세나 안토니오 네그리 혹은 가라타니 고진처럼 쉽지않게 이해하는 경로도 많다는 것이죠. 맑스의 <자본론>이 인류사의 고전이랄 수있는 이유가 바로 이 해석의 다양성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punk님의 글은 제게 있어서 더 어렵습니다. (다만 이 글과 관련해 쓰신 글은 이해하기 좋은 글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이해하고 나서 소통하기 위한 글을 적을 수가 있지요.)글의 길이는 제게 상관이 없습니다. 읽는데 오래 걸리는 책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제가 모르는 용어가 너무 많습니다. 인터넷으로 용어뜻을 찾아가며 읽어야 할 지경이죠.
김거울님이 제 글은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만 제가 보기에 제 글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전문용어?를 많이 써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문장이 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이나 문장자체가 삐걱꺼리고 걸리적 거려요. 한마디로 글을 못쓴다는 이야깁니다. 베팍의 다른 많은 문장가분들의 유려한 문체에 비하면 저는 딱히 저만의 "문체"랄만한 특징이 없어요. 좋은 글이라면 일단 그 글의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문장자체가 유기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글은 유기적이기는 커녕 뒤죽박죽에다가 종종 문법적으로 틀리기조차 하죠. -_- 일단 이런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용어부분은 그렇습니다. 김거울님이 양자역학을 서술하는데 동원되는 수학,물리학 용어의 예를 들어주셨는데 수학이나 물리학의 용어와 철학이나 인문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예를들어 삼각부등식, 연산자 등등을 이해하려면 이와 관련되는 수학지식을 배경으로 깔지 않으면 안됩니다. 푸리에 급수랄지 미분방정식등등을 모르고 양자역학을 (상식적 차원이 아닌)수학적 차원에서 이해할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와달리 인문학적 개념어등은 손쉽게 인터넷 검색등으로 찾아볼수있습니다.(물론 더 바람직한 것은 그와 관련된 책을 독해하는게 더 바람직하긴 하지만요) 예를들어 브레히트의 "소격효과estrangement effect "라는 용어를 봅시다. 검색하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598 바로 이렇게 뜹니다. 이 설명이 완벽한 설명은 안됩니다만 몇 줄 안되는 짧은 설명만으로도 대강의 개념이해는 가능하죠. 인문학은 전에도 이야기한적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일상언어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비록 생소한 몇몇 표현들이 나오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해할수있습니다. 때문에 접근성이라는 면에서 수학이나 물리학과는 비교하기 힘들죠. 제가 얼마나 자주 "소격효과"같은" 어려워 보이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서 찾아보면 얼마든지 개요정도는 파악가능한 것들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인문학(철학을 포함해)은 어렵지 않습니다. 김거울님 <자본론>을 쉽다고 느끼신 것처럼요. 물론 그것도 심층적으로 파고들면 또다른 영역이 되긴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파인만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도 큰 틀에서 동의합니다. 파인만 같은 분은 양자전기역학QED를 정식화해서 유명한 분인데 이 과정에서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한 일종의 "그림"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죠.
이런 그림인데 수식으로만 표현하기보다는 이러한 그림으로 설명함으로써 (직관적인) 양자이론의 이해에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압니다.(수학에는 이처럼 종종 그림으로 설명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가능 한 경우가 있습니다. 집합론에 등장하는 밴다이어그램도 그 한 예죠)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라는 책도 써서 물리학전공하는 학부생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고요. 네 맞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없다면 그것에 대해서 100%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표현은 저도 일부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능하다면 보다 알기 쉽게 이해할 수있는 유려한 문체와 대중적 화법으로 소통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것이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는 글이라면요. 그러나 이 소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호이해에 기반합니다. 전문가들이나 인문학적 훈련이 된 독자들만 이해될 수있는 난해한 글도 소통에 문제가 되는 일방통행이지만 거꾸로 일방적으로 쉬운 글도 대중들에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의 게시글에도 이야기했듯이 쉬운글자체가 지나친 단순화로 인한 과도한 언어적 폭력이 될 수있기 때문이죠. <현대 일본사상>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디까지나 명쾌함과 경쾌함을 몸에 두른 아사다(아키라)에 비해 하스미(시게히코)는 전략적 난해함을, 가라타니(고진)은 분명하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명쾌함에서 멀어져 가는 역설적인 어려움을(본인의 의도와는 별개로?) 매력적으로 체현하고 있습니다"(<현대일본사상> 120쪽) 저자인 사사키 아쓰시는 이 책에서 현대일본사상을 논하기 위해 앞서 말한 아사다 아키라, 하스미 시게히코, 가라타니 고진 등등의 사상을 비교분석하는 과정에 저와같은 이야기를 한 것인데요. 이들 중 아사다 아키라는 80년대 이후의 일본현대사상을 논하면서 "모든 것은 <구조와 힘>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저자가 말할만한 바로 그 책 <구조와 힘>(한국어 제목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을 쓴 사람입니다. 책을 읽어보시면 느끼실수 있지만 이책의 서술방식은 사사키 아쓰시가 말한바처럼 명쾌합니다. 그래서 마치 독자들로 하여금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구조)주의에 대해서 "쉽게"이해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죠. 일본 사상계 혹은 독서계에 소위 "뉴아카데미즘'이라는 신조류를 형성케 할 만큼.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그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피상적 이해에 불과했다는 평가지요. 이는 단지 아사다 아키라의 문체만을 이야기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 사상사 전반에 대한 평가에 더 가깝긴 하지만요. 이와는 반대로 하스미 시케히코같은 평론가는 데리다 사상을 그대로 수행한 것과 같은 해체적 에크리튀르를 보여주는 문체를 구사합니다. 다시말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이와 비교해서 가라타니 고진은 "분명하게 하려고 하면 명쾌함에서 멀어져가는" 저자라 할 수 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읽어보면 이 표현이 매우 정확하다고 느낄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일단 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쉽게 읽힙니다. 자크 데리다나 하스미 시케히코처럼 이중삼중의 중첩적인 반성적 차원을 동원한 글쓰기가 아니라 짧고 분명한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때문에 얼핏 쉽다고 느껴지지요. 그러나 이 문장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 표현이 나오게된 맥락속에는 간단치 않은 사상의 계보학이 숨어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있습니다. 그만큼 해석 자체가 현상적으론 쉽게 표현되었지만 현상의 이면에 간단치 않은 본질과 구조가 숨어있는 문체라는 것이지요. 마치 앞서말한 맑스의 <자본론>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 맑스도 그렇지만 가라티니 고진이 문체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서술한 이유는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되도록 하기위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배려가 또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낳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어려운 문장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어떻게보면 차라리 데리다나 하스미 시게히코처럼 해체론을 설명하기 위해 그 해체론을 수행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그 중첩적이면서 난해한 글쓰기가 해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말해 "쉬운" 글들일수 있다는 것이지요.(데리다 스스로도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기 위해) 상세히 서술하려 하였다"말한바 있습니다만 그런 친절함이 데리다의 문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난해함으로 다가왔던 것이죠. 그러나 그의 글쓰기 전략과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그러한 해체적 글쓰기는 충분히 이해/독해가능한 글쓰기의 실천 일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예상보다 다소 장문 글이 되어졌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다시 말씀드리자면 소위 "쉬운 글"을 쓴다는게 말처럼 "쉽게"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자측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글이 "쉽게" 읽힌다고 해서 그 글이 온전히 이해되었는가 하는 면에서는 또 다른 반론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글이 쉽게 읽히는 것은 약 일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플라톤이 이야기한 파르마콘처럼 말이지요. (철학자로서 진중권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파르마콘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 글을 참조하세요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62364 )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에는 앞서도 지적했다시피 소위 "소통"이라는 것에는 아포리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