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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기 다른 경험을 하며 삽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결정되니까요.

매일 운전을 하고 다닌 사람들은 버스비 인상에 무심합니다. 대신 전용차선를 새로 가설하는 것이나, 고가도로를 뚫는 일, 유류비가 올라가는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니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에서 풍부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지방에서 문화시설이 부족해 작은 연주회 하나에도 즐거워하는 걸 이해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에서의 문제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사실 평생 남성으로 살면서 '여성의 관점'을 이해하긴 쉽지 않습니다. 누리면서 살아왔고,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만해도 상당히 클때까지 남중, 남고를 다녀서 그런지 여성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를 잘 이해 못했습니다. 남자를 보면 이기고 싶었지만, 여성은 딱히 이길 필요가 있나... 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마음 속 깊이 남성과 여성의 영역은 다르며,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차별적 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남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충격적 경험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친구랑 같이 살았는데, 제 친구 어머니와 누나가 자취방으로 올라오더니 하루 묶으며 집을 대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내려가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상당히 충격적이었지만 그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어머니에게 누워서 이것저것 요구를 하더군요. 저는 겪어보지 못한 가정 문화에 우왕좌왕하며 도와드릴 것 없는지 물어보고 이것저것 했지만, 결국 불편해서 집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한국 남성들은 이렇게 사는구라 라고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가 평소 성차별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경험은 여성주의를 막 공부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여성주의 공부하다보면 남성화된 여성 권력에 대해 배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제가 참 바보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저렇게 여성차별의식을 깊이 받아들인 여성도 가만히 있는데, 남성이 어떤 일을 해야하나요? 할 필요 있나요?'라고 물은 것이지요. 그랬더니 한 현명한 선배가 이렇게 답해줬습니다.

'문제라고 인식한 사람이 고치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이 두 가지 경험을 토대로 얘기할까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여성주의를 공부한 적도 없습니다. 남성만이겠습니까만... 또 여성과 남성의 고착화된 권력구조의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당연하다고 행동합니다. 물론 대부분 남녀평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말로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다라고 간단히 얘기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냥 그런 수준입니다.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지만 남성에게 편리하게 주어진 구조를 편히 느끼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저만해도 살면서 구체적 순간들에서 무심코 불쾌함을 유발할 때가 있을 겁니다.

정봉주 의원도 그렇다고 봅니다. 그냥 그런 수준입니다. 여성들이 강하게 말할 때 '맞는 말이지'라고 편히 생각하다가, 실제 삶의 순간에서는 살아왔던 데로 사는 그냥 그런 사람들의 삶을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수준'을 인증한다고 말하는 건, 넌 그냥 그런 수준이었어라고 경멸하는 것이 옳을까요.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을 뿐입니다. 주어진 구조가 남성에게 유리하다고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왔고,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현명한 제 선배가 말해줬던 데로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그냥 그런 수준을 인증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이해시키는 일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제 선배를 포함한 훌륭한 여성운동가들은 이미 그렇게 해왔고 말입니다.

정봉주는 인식 상에서의 한계를 분명히 보였지만, 이해를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서로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