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토요일 아침이 좋겠다.
어쨌든 일요일은 마음이 쫓기니까.
간 밤의 꿈자리가 어땠든, 겨울 아침의 서걱한 찬 기운이
파자마 자락을 파고들어오면 굳었던 몸이 바드락 거리며
조금씩 펴져간다. 옹색한 베란다에 놓아둔 키 낮은 나무
의자에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 고개를 한껏 젖히고
가만히 남은 잠과 아침 사이를 오간다.

급하지도 않게 그리고 너무 늦지도 않게 담배 한 개비를
물어들었다. 발갛게 파고들어오는 불조각을 깊게 들이마
시며 흡족함을 느낀다. 그 것 만으로도 완벽한 시간이다.

베란다 문이 열리고 그녀는 가타부타 없이 낡은 재털이
옆의 담배를 집어들고 맞은 편에 앉았다. 이 아침을 다
빨아들일 만큼 깊게 연기를 들이마시곤 낮은 기침을
뱉어낸다. 이로써 이 아침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해진다.
앞서의 완벽과는 별개로 또 다른 완벽함이다.

그 다음의 시간은 어디로 흘러도 되겠다.


취기가 올라 조금은 달뜬 얼굴로 그녀가 웃었다.
테이블에 고개를 뭍고 발그레한 얼굴만큼 웃었다.
어쩌면 창백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나도 취했으니까.


오후 내내 작은 마당을 데우던 햇살이 아직 남았으면 한다.
담장 위를 서성거리던 길 좋은 바람이 떠나기 전이어야 겠지.
바닥에 놓인 작은 대야에 갈래진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머리칼 사이를 헤집는 부드러운 손가락이 얕은 거품을
부풀려간다. 두피에 닿는 풋 사과의 조각같은 촉감과 향기.
불안하게 뒤로 기운 철제 의자를 햇살의 창과 바람의 날이
버티고 있다.


어쩌면 난 미용실에 갈 때 마다 매 번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고
언질을 두었다. 당신이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늦은 저녁의 파티장이
아니라 이른 오후 미용실의 샴푸실일거야.
난 머리를 감겨주는 이와 언제든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으니까.

나중의 이야기지만 늘 그랬던 것 처럼 그녀를 작은 마당에 남겨두고
그 오후를 빠져나왔다.  


실없는 말에 그녀는 잘도 쿡쿡 웃어준다.
때론 머리를 끄덕여가며 웃는다.
테이블 위에 접은 팔 속으로 깊게 얼굴을 잠기우며 낄낄거린다.
이 시간들은 딱히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온통 하얀 색으로 지어진 자정의 까페, 그 속의 마지막 손님 처럼
그 건 손에 잡히지 않고 말갛게 꺼뜨려져 가는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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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남았지만 이야기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