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애들은 사과할 줄 모른다
- 작성일
- 11-03-13 03:40
중학교 때였는데요,
지금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매우 사소한 일이긴 했는데
친구와 주먹 다짐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저도 이리 저리 치이면서 꽤 동글동글해 졌는데
그 때만 해도 치기어린 시절이라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울컥하는 게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매우 사소한 장난(?) 정도를 했는데 제가 무시당했다고 느꼈나 봅니다.
아무튼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제가 트집을 잡고 다그치다가
친구가 발뺌을 한다고 느껴지니,
참지 못하고 선빵을 날렸습니다.
애들 싸움이란 게 다 그렇듯이
제대로 들어가는 건 몇 개 없고
초기의 몇 방만 투닥투닥 하다가 결국에 멱살잡이 드잡이로 엉망이 되기 마련입니다.
일단 치긴 쳤는데, 이후로 정신이 하나도 없어가지고 내가 때리는지 맞는지도 모를 상황에서
친구들이 말리고 해서
2라운드는 말싸움으로 돌입하게 되었어요.
저는 왜 그랬냐고 다그쳤고
그 친구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을 했지만,
저는 머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요.
점심시간 내내 같은 내용으로 반복 반복을 하다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고 시간이 너무 지나가니까
제가 최후의 주먹 한 방을 날리고
"비겁한 새끼" 하고 나가버렸습니다.
사실 비겁한 새끼는 나였습니다.
덩치 차이도 그렇고 진짜로 계급장떼고 맞짱을 떴다면
제가 이길 턱이 없었을 겁니다.
선빵을 날린 데다가, 친구들이 시의적절하게 잘 말려줬고(또 그 때 제가 반장이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또 한 방 치고 도망간 셈이니...
다음날 친구 얼굴을 보니 한 쪽 볼에 멍이 들어 있더군요.
친구 부모님은 머라고 생각했을까요. 요새 같음 당장에 학교로 찾아오실 일입니다.
저는 친구가 저를 먼저 도발한 거라고 여겼기에 전혀 사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친구 또한 그 입장에서는 꽤나 황당한 일로
제게 사과를 해야 된다는 필요성 아니 사과할 말 자체를 찾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이사를 해서
중학교는 동창 친구들 전혀 없는 다른 도시에서 다니게 되었는데
그 다른 도시에서 유일한 초등학교 동창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알량한 자존심 한 번 지키는 와중에 소중한 친구 하나가 저랑 영원히 바이바이 하게 됩니다.
'내가 너 아니면 친구가 없냐' 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중학교 때 그 일이 자꾸 생각이 나더군요.
어린 친구들의 연기가 정말 리얼하고
그 나이 또래의 생리와 사고 방식을 잘 포착했습니다.
욕이 좀 난무하는지라 여성분들이 보시기엔 좀 거북스러울지 몰라도
나중에 자녀 교육 훈련 삼아 보시기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