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아직은 해거름의 여운이 끝나지 않았다.
붉고 깊게 창날 처럼 바다에 내려 꽂혔던 낙조는 이제 창백하게 바래져가고 있다..
이 무렵의 갯바위는 두터운 어둠같은 침착함을 지녔다. 섯부르게 들쳐대는 파도도
흘겨가는 바람도 무저갱의 바닥 같은 고요함을 깨트리지 못한다.
이윽고 별빛이 내 어깨를 어루만질 때에야 갯바위는 꽃잎처럼 피어올랐다.

칠흙의 머리칼이 바알간 뺨 위에 드리워진다. 이내 상아로 조각한 피리같은 손가락이 다시 
귀 뒤켠으로 거두어간다. 그녀는 감탄할만큼 부지런하게 양 옆의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꺼내고 그만큼 부지런히 머리를 귀뒤에 잡아매두느라 
신경을 쓴다. 술버릇일지도 모르겠다. 

담배를 피우러 커피점의 문을 열고 나섰다. 이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커피점이란 거의
멸종된 존재다. 겨울 밤 아래 오두커니 버티고 선 키 큰 나무가 시야에 들어온다. 키가 큰
목련나무는 좀 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그 저 담 넘어 한 길 정도 어깨를 펴고 있는 정도가 
흔할게다. 목련나무의 키에 대한 실없는 생각을 하며 연기를 바람에 태워 보내다 가지 끝
마다 맺힌 꽃순을 발견했다. 1월이 이제 막 시작했는데 너무 이르지 않은가.
커피점을 나서며 목련이 피면 밤에 구경을 오자고 말했다.

밤은 부지런히 바다를 밀어올렸다. 두 뼘 쯤 아래에 있던 바다가 어느덧 발끝에서 찰랑인다.
좀 더 밤이 깊어지면 자리를 옮겨 앉아야할 것이다. 이미 밤과 바다는 경계가 없어지고 
파도 소리만 바다로 남았다.  

아까부터 그녀의 목소리는 귓바퀴를 맴돌다 기포처럼 꺼트려지고만 있다. 내 주의력은
온통 그녀의 손에 매달리고 있었다. 성기게 늘어트려진 머리칼 사이를 은어처럼 헤집어 나와
은빛 비늘을 뿌려내며 커튼을 거두듯 머릿단을 쓸어넘긴다. 손의 각도가 바뀔 때 마다
조명을 받아 몸을 뒤집는 물고기 처럼 반짝인다.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이 예쁘다는 말을
토해내고 말았다. 내가 본 최고의 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알아."


봄꽃은 툭툭 진다. 
밤의 바다는 기어코 갯바위를 삼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선 파도소리가 난다.

 
                                                                                                    ...zz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