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3. 지리산에서 첫 날. (성삼재-벽소령)
- 작성일
- 10-08-10 17:30
화엄사 탐방 및 그 아래 계곡에서의 즐거운 19금 놀이를 마치고 썩 만족스럽지 않은 저녁을 사먹고 들어온 민박집.
여기서의 1박은 휴가 기간 3박 중 단연 최악이라 할 만 했다.
고물 선풍기만 덜덜거리고 돌아가는 찜통 같은 방,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TV, 방에서 멀리 떨어진 지저분한 샤워실...
어쨌든 다음 날 새벽 일찌감치 일어나야 하니 억지로라도 잠을 청했는데,
세상에서 잠자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 생각하는 마나님께서 자다 말고 짜증을 부리신다. 옆방에서 끊임없이 새나오는 소음 때문에.
뭐, 무슨 19금스러운 소음은 아님. 무슨 가요 프로인지 이은하(!)의 '밤차'가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려퍼지는 가운데 웬 코흘리개 어린이가 아주 단조로운 무표정한 소리로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를 5초 간격으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 보았더니 아비란 자는 술에 곤죽이 되어 방안이 떠나가라 드르렁~~~, 엄마는 어디 갔는지 알 길이 없고, 몽롱한 표정의 어린이가 모기장문이 떨어져나간 문지방 위에 쪼그리고 누워 TV를 보고 있더라.
'옆방 사람도 자야 하니 소리 좀 줄여 줄 수 있을까?' 하고 어린이에게 말을 건넸더니, '전 가려워서 못자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다. -_-;;;
모기에 물어뜯기는 게 가엾어서 모기장을 문짝에 붙여줄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저 대답을 듣고 나니 왠지 피로감이 몰려와서 그냥 '소리좀 줄여라' 한 마디만 하고 방에 들어와서 찜통 문을 닫고 대충 자버리다...
***********************
새벽 다섯 시에 기상. 성삼재에 올라가는 6시 버스를 잡아타려면 후다닥 움직여야 한다. 좀 빡센 산행을 위해서 4시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잠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분 땜시 그건 불가능-_-;;;
그래서 나의 산행은 이런 몰골로 시작되었다-_-;;
당장의 목표는 능선의 출발지점이라 할 수 있는 노고단고개까지의 준 포장도로 2.6km.
이 시점에서 '천왕봉 28.1km'는 등산객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인 듯-_-;
(물론 서울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 3시에 구례구역 하차 후 4시 버스를 타고 올라와 당일치기로 천왕봉을 찍는 무시무시한 아저씨들도 있긴 하다)
뭐, 비옷을 살 때부터 예상했던 거지만 출발한 지 딱 5분만에 비는 그쳤다-_-;;
40여 분을 걸은 끝에 도착한 노고단대피소.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옆에 나있는 돌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능선이 나온다.
노고단 정상은 휴식을 위해 통제되어 있다. 특정 시기, 특정 시각 대에만 개방하는 걸로.
그래서 대부분의 등산객은 이 돌무더기 앞에서 노고단 인증샷을 찍는다.
자, 이제 출발이다.
1차 휴식지는 3.2km 떨어진 임걸령.
능선에서 만나는 첫번째 샘이 솟는 곳이기도 하다.
천왕봉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저 사진은...
뽀샵이 틀림없다-_-;;;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본 기억은 단 한번도 없거늘.
산행 내내 구름이 자욱했기에 그럴싸한 능선 사진은 단.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ㅠㅠㅠㅠㅠ 할 수 없이,
이름은 알 길 없으나 기념으로 능선 옆에 핀 꽃 하나 찰칵. (2)
돼지령에 이어 이번에는 노루목. 노루가 많이 나타나서 생긴 이름이렷다.
임걸령의 고도가 1320m였던 걸 생각해 보면 꽤나 많이 올라왔다.
노루목 삼거리는 지리산 서부의 최고봉인 반야봉에 오르기 위한 갈림길이도 하다.
원래는 우리도 반야봉에 다녀오려고 했었으나 아까의 삽질로 날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패스ㅠㅠ
처음으로 저 지팡이를 들고 나선 산행.
20대에는 저걸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정말 소중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_-;;;
구름이 아주 조금 걷혔다.
능선 아래 그 수를 알 수 없는 깊은 골짜기들이 보일 듯 말 듯.
저건 반야봉.
예로부터 천왕봉에서 보는 일출과 반야봉에서 보는 일몰이 최고라 쳤다지만
반야봉에서 일몰을 봤다간 잘 곳이 마땅찮아지기 때문에 오늘날엔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
노고단에서 출발하는 능선의 고도는 대략 1300대,
조금 전에 찍었던 삼도봉은 1532m였던가,
그리고 최종 목표인 천왕봉은 1915m.
그런데 자꾸 내려간다-_-;;;
저 나무계단은 도대체 몇 개짜리인가,
지날 때마다 헤아려보려 하지만 언제나 중간에 잊어버린다.
구글링을 좀 하면 알아낼 수 있는 수치이지만 굳이 그러고 싶진 않다.
어쨌든 한참 내려간다.
놀라운 마나님.
배낭을 짊어지고 다섯 시간 남짓 9km 넘게 걸었는데 땀 한 방울 안 흘리심.
이곳 화개재에서 연하천까지의 코스가 첫날 산행로 중 가장 힘들다.
화개재를 출발하여 조금 지루한 오르막을 30여 분 오르고 나면,
토끼봉이 나타난다. 아까 지나쳤던 삼도봉과 거의 같은 고도-_-;;;
근데, 표지판을 보니 오잉? 화개재에서 벌써 1.8km씩이나 왔다고?
믿어지진 않지만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법. -_-;;;
여전히 땀은 안 흘리지만 슬슬 마나님의 얼굴에 힘든 기색이 비치기 시작한다.
잡목림이 참으로 꽁기꽁기.
지리산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반달가슴곰의 몽타주-_-;;;
무서워 죽겠다-_-;;
토끼봉을 벗어난 지 근 한 시간 가량 되었건만,
고작 600m 왔단다-_-;;;
아무래도 아까 토끼봉에 나왔던 수치는 낚시였던 게야...
또 한참 후,
이제 400m를 전진했을 뿐.
또 한참 후,
이제 400m를 전진했을 뿐. (2)
터덜터덜...
드디어 400m 전방.
앞서 지나쳤던 화개재처럼 여기서도 상당히 긴 나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휴, 드디어 연하천대피소 도착.
여기까지의 산행을 꽤나 고된 편이었기에 한참을 쉬다보면
벽소령대피소까지 갈 것 없이 여기서 그냥 밤을 보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_-;;
연하천대피소가 여인숙이라면 벽소령대피소는 호텔이라 할 정도로 시설의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이미 돈을 내고 벽소령대피소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만 사직구장 플레이오프 예매만큼이나 대피소예약은 빡센 일이다. 그 현란한 광클의 향연이란.)
표지판엔 안 적혀 있지만 오늘의 최종목표 벽소령대피소까지의 거리는 3.6km.
직전 코스보다는 상대적으로 평탄(?)하다.
금세 700m 줄었다. 역시 좋군.
연하천을 지나 삼각봉을 넘고 나면 쩌~~~~~~~~~~ 멀리 천왕봉이 보일 수도 있다.
보이시는가? 마음의 눈이라도 동원해서 보시라-_-;;;
거리가 팍팍 줄어드니 기분 좋구먼.
지리산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반달가슴곰의 몽타주-_-;;;
무서워 죽겠다-_-;; (2)
아니, 여기서도 고사목이 보이다니?
연하천-벽소령 코스를 달릴 때마다 터닝 포인트로 삼곤 하는 멋진 바위.
위 사진 우상귀 쪽, 바위에 뿌리를 박고 솟아난 소나무를 당겨봤다.
아구구구, 되다~~~
위 바위를 돌아내려오면 보이는 표지판. 앞으로 1.5km.
보긴 이래 보여도 꽤나 가파르고 미끌미끌한 바윗길.
고도 1500m 쯤 되니까 좀 달라보이는 식물군이 보인다.
능선 저 아래쪽에 몰려드는 구름. 아까 뚫고 지나갔던 비구름일까?
드디어 벽소령 '호텔' 도착.
벽소령대피소의 유일한 불편한 점은,
'식수를 뜨러 가다가 하산할 기세'.
오늘의 만찬.
모든 잔반 및 설거지거리는 모두 뱃속으로 직행시키는 걸로 처리한다-_-;;
총 3박의 일정 중 가장 호화로웠던(?) 2박째를 벽소령대피소 안의 침낭에서 보낸다.
여기서의 1박은 휴가 기간 3박 중 단연 최악이라 할 만 했다.
고물 선풍기만 덜덜거리고 돌아가는 찜통 같은 방,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TV, 방에서 멀리 떨어진 지저분한 샤워실...
어쨌든 다음 날 새벽 일찌감치 일어나야 하니 억지로라도 잠을 청했는데,
세상에서 잠자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 생각하는 마나님께서 자다 말고 짜증을 부리신다. 옆방에서 끊임없이 새나오는 소음 때문에.
뭐, 무슨 19금스러운 소음은 아님. 무슨 가요 프로인지 이은하(!)의 '밤차'가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려퍼지는 가운데 웬 코흘리개 어린이가 아주 단조로운 무표정한 소리로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를 5초 간격으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 보았더니 아비란 자는 술에 곤죽이 되어 방안이 떠나가라 드르렁~~~, 엄마는 어디 갔는지 알 길이 없고, 몽롱한 표정의 어린이가 모기장문이 떨어져나간 문지방 위에 쪼그리고 누워 TV를 보고 있더라.
'옆방 사람도 자야 하니 소리 좀 줄여 줄 수 있을까?' 하고 어린이에게 말을 건넸더니, '전 가려워서 못자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다. -_-;;;
모기에 물어뜯기는 게 가엾어서 모기장을 문짝에 붙여줄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저 대답을 듣고 나니 왠지 피로감이 몰려와서 그냥 '소리좀 줄여라' 한 마디만 하고 방에 들어와서 찜통 문을 닫고 대충 자버리다...
***********************
새벽 다섯 시에 기상. 성삼재에 올라가는 6시 버스를 잡아타려면 후다닥 움직여야 한다. 좀 빡센 산행을 위해서 4시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잠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분 땜시 그건 불가능-_-;;;
1인분에 7천원 씩이나 하는 재첩국. 아무리 관광지 물가라 하지만 밥상의 허름함이 좀 너무했다.
아침 다섯시 반에 밥을 사먹을 수 있는 걸로도 감지덕지할 일이긴 하지만.
보통 '지리산 종주'라 하면,
좁게는 노고단-천왕봉 사이의 능선을 가로지르는 것을 말하는데
'진정한' 종주가 되려면 ('진정한'이라는 말 들어가는 것 치고 개드립 아닌 게 참 적긴 하지만)
화엄사 아래에서 노고단까지 올라간 뒤 천왕봉을 지나 중봉을 거쳐 대원사로 하산하는 거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남원 어디더라...에서 출발하는 것이 진정한 종주라는 '등산 탈레반'도.
그러나 우리 가족의 경우 논의의 여지는 없다.
'미쳤냐? 차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을 걸어 올라가게?'
이 한 마디로 우리 산행의 출발지는 성삼재로 결정.
여섯 시에 구례터미널을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올라온 성삼재.
사방에 온통 구름이 가득해 인증할 수단이 이것 밖에 없어 보인다.
성삼재에 제법 여러 번 올라와 보았다고 생각하건만,
날씨가 좋았던 기억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후두둑 쏟아지는 물방울들.
비라고 생각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산 아래 동네에는 비가 안 왔으니까-
둥둥 떠다니는 방울이 아니라 땅에 후두둑 떨어지는 거니 어쨌든 걱정.
한 20분 정도 기다려보다가 어쩔 수 없이 6천원짜리 비옷을 하나 사기로 결정.
아침 다섯시 반에 밥을 사먹을 수 있는 걸로도 감지덕지할 일이긴 하지만.
보통 '지리산 종주'라 하면,
좁게는 노고단-천왕봉 사이의 능선을 가로지르는 것을 말하는데
'진정한' 종주가 되려면 ('진정한'이라는 말 들어가는 것 치고 개드립 아닌 게 참 적긴 하지만)
화엄사 아래에서 노고단까지 올라간 뒤 천왕봉을 지나 중봉을 거쳐 대원사로 하산하는 거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남원 어디더라...에서 출발하는 것이 진정한 종주라는 '등산 탈레반'도.
그러나 우리 가족의 경우 논의의 여지는 없다.
'미쳤냐? 차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을 걸어 올라가게?'
이 한 마디로 우리 산행의 출발지는 성삼재로 결정.
여섯 시에 구례터미널을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올라온 성삼재.
사방에 온통 구름이 가득해 인증할 수단이 이것 밖에 없어 보인다.
성삼재에 제법 여러 번 올라와 보았다고 생각하건만,
날씨가 좋았던 기억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후두둑 쏟아지는 물방울들.
비라고 생각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산 아래 동네에는 비가 안 왔으니까-
둥둥 떠다니는 방울이 아니라 땅에 후두둑 떨어지는 거니 어쨌든 걱정.
한 20분 정도 기다려보다가 어쩔 수 없이 6천원짜리 비옷을 하나 사기로 결정.
그래서 나의 산행은 이런 몰골로 시작되었다-_-;;
당장의 목표는 능선의 출발지점이라 할 수 있는 노고단고개까지의 준 포장도로 2.6km.
이 시점에서 '천왕봉 28.1km'는 등산객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인 듯-_-;
(물론 서울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 3시에 구례구역 하차 후 4시 버스를 타고 올라와 당일치기로 천왕봉을 찍는 무시무시한 아저씨들도 있긴 하다)
뭐, 비옷을 살 때부터 예상했던 거지만 출발한 지 딱 5분만에 비는 그쳤다-_-;;
40여 분을 걸은 끝에 도착한 노고단대피소.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옆에 나있는 돌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능선이 나온다.
마침내 능선 도착.
이름은 알 길 없으나 기념으로 능선 옆에 핀 꽃 하나 찰칵.
이름은 알 길 없으나 기념으로 능선 옆에 핀 꽃 하나 찰칵.
노고단 정상은 휴식을 위해 통제되어 있다. 특정 시기, 특정 시각 대에만 개방하는 걸로.
그래서 대부분의 등산객은 이 돌무더기 앞에서 노고단 인증샷을 찍는다.
자, 이제 출발이다.
1차 휴식지는 3.2km 떨어진 임걸령.
능선에서 만나는 첫번째 샘이 솟는 곳이기도 하다.
천왕봉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저 사진은...
뽀샵이 틀림없다-_-;;;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본 기억은 단 한번도 없거늘.
산행 내내 구름이 자욱했기에 그럴싸한 능선 사진은 단.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ㅠㅠㅠㅠㅠ 할 수 없이,
이름은 알 길 없으나 기념으로 능선 옆에 핀 꽃 하나 찰칵. (2)
한여름이라서 등산로 좌우에 잡목/잡초가 우거져 있다.
우리 같이 등산복이 아닌 반팔/반바지만 걸친 사람들은 풀독도 걱정될 지경.
어쨌든 아직은 산행을 시작한 지 고작 두어 시간. 마냥 즐겁기만 한 마나님.
그런데,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꾸준히 10-50m 정도 앞서서 걷다가 돼지령(멧돼지가 자주 출몰했다 하여 붙은 이름) 쯤에서 사진 한 방 찍어주려고 멈춰서서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마나님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_-;;;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고새 발목이라도 다쳤나? 아니면 산 밑으로 굴렀나? 그럴 만한 장소도 없구만.
설마, 혹시...
자기를 뒤에 떨어뜨렸다고 '나 등산 안해, 혼자 다녀 와! 하고 노고단으로 내빼버렸나?
마침 전화기는 두 개 다 내 주머니에 들어있으니 전화를 해봐야 소용도 없다...
몸이 바짝 단 나머지 가방을 자리에 던져놓고 노고단까지 역주행을 시작.
산길을 뛰어가면서 마주치는 아저씨들에게 '여자 혼자 지나가는 거 봤슴까?' 질문을 하지만 모두들 못 봤다는 대답.
노고단 전방 1km까지 역주행을 했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원위치, 임걸령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 임걸령으로 달렸다.
다행이다. 임걸령에 도착하니 삐죽거리는 얼굴로 맞이하는 마나님.
아직도 어떻게 해서 중간에 마주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도리가 없다-_-;;;
점심을 먹기 위한 곳까지 딱 반 왔다.
우리 같이 등산복이 아닌 반팔/반바지만 걸친 사람들은 풀독도 걱정될 지경.
어쨌든 아직은 산행을 시작한 지 고작 두어 시간. 마냥 즐겁기만 한 마나님.
그런데,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꾸준히 10-50m 정도 앞서서 걷다가 돼지령(멧돼지가 자주 출몰했다 하여 붙은 이름) 쯤에서 사진 한 방 찍어주려고 멈춰서서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마나님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_-;;;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고새 발목이라도 다쳤나? 아니면 산 밑으로 굴렀나? 그럴 만한 장소도 없구만.
설마, 혹시...
자기를 뒤에 떨어뜨렸다고 '나 등산 안해, 혼자 다녀 와! 하고 노고단으로 내빼버렸나?
마침 전화기는 두 개 다 내 주머니에 들어있으니 전화를 해봐야 소용도 없다...
몸이 바짝 단 나머지 가방을 자리에 던져놓고 노고단까지 역주행을 시작.
산길을 뛰어가면서 마주치는 아저씨들에게 '여자 혼자 지나가는 거 봤슴까?' 질문을 하지만 모두들 못 봤다는 대답.
노고단 전방 1km까지 역주행을 했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원위치, 임걸령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 임걸령으로 달렸다.
다행이다. 임걸령에 도착하니 삐죽거리는 얼굴로 맞이하는 마나님.
아직도 어떻게 해서 중간에 마주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도리가 없다-_-;;;
점심을 먹기 위한 곳까지 딱 반 왔다.
돼지령에 이어 이번에는 노루목. 노루가 많이 나타나서 생긴 이름이렷다.
임걸령의 고도가 1320m였던 걸 생각해 보면 꽤나 많이 올라왔다.
노루목 삼거리는 지리산 서부의 최고봉인 반야봉에 오르기 위한 갈림길이도 하다.
원래는 우리도 반야봉에 다녀오려고 했었으나 아까의 삽질로 날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패스ㅠㅠ
처음으로 저 지팡이를 들고 나선 산행.
20대에는 저걸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정말 소중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_-;;;
20km 남았다.
그러면 이제 사정권-_-???
여기는 이름하여 삼도봉.
여기를 기준으로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함양/하동)군이 갈라진다 하여 붙은 이름.
당연히 전통적인 이름은 아니리라.
그러면 이제 사정권-_-???
여기는 이름하여 삼도봉.
여기를 기준으로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함양/하동)군이 갈라진다 하여 붙은 이름.
당연히 전통적인 이름은 아니리라.
구름이 아주 조금 걷혔다.
능선 아래 그 수를 알 수 없는 깊은 골짜기들이 보일 듯 말 듯.
저건 반야봉.
예로부터 천왕봉에서 보는 일출과 반야봉에서 보는 일몰이 최고라 쳤다지만
반야봉에서 일몰을 봤다간 잘 곳이 마땅찮아지기 때문에 오늘날엔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
노고단에서 출발하는 능선의 고도는 대략 1300대,
조금 전에 찍었던 삼도봉은 1532m였던가,
그리고 최종 목표인 천왕봉은 1915m.
그런데 자꾸 내려간다-_-;;;
저 나무계단은 도대체 몇 개짜리인가,
지날 때마다 헤아려보려 하지만 언제나 중간에 잊어버린다.
구글링을 좀 하면 알아낼 수 있는 수치이지만 굳이 그러고 싶진 않다.
어쨌든 한참 내려간다.
이제 다 내려왔다.
점심을 먹게 된 이 장소의 현재 공식 명칭은 '화개재'.
현재 개발된 등산로는 없지만 여기서 남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있기에 붙은 이름이겠지.
분명히 이 지점의 예전 이름은 '뱀사골' 어쩌고였는데,
뱀사골 대피소가 폐쇄된 이후 '뱀사골'이라는 이름을 애써 지우려는 건지 뭔지...
그나저나 뱀사골대피소가 없어지는 바람에 점심을 해먹을 장소가 마땅찮아졌다.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의자 옆에는 '여기서 취사/야영을 하면 벌금'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고, 그러나,
준법 정신 어지간히 없는 우리 부부, 슬쩍 물을 끓였다.-_-;;
점심 메뉴는 다행히도(?) '전투식량'이었기에 주변을 더럽히지는 않았다.
그걸로 양심의 가책과 대충 타협.
주능선과 뱀사골코스(반선)의 갈림길 표시.
뱀사골코스는 요즘 등산객이 줄었는지 주변 잡목이 부쩍 무성해졌다.
다음 포인트인 연하천대피소까지의 거리는 4.2km.
점심을 먹게 된 이 장소의 현재 공식 명칭은 '화개재'.
현재 개발된 등산로는 없지만 여기서 남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있기에 붙은 이름이겠지.
분명히 이 지점의 예전 이름은 '뱀사골' 어쩌고였는데,
뱀사골 대피소가 폐쇄된 이후 '뱀사골'이라는 이름을 애써 지우려는 건지 뭔지...
그나저나 뱀사골대피소가 없어지는 바람에 점심을 해먹을 장소가 마땅찮아졌다.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의자 옆에는 '여기서 취사/야영을 하면 벌금'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고, 그러나,
준법 정신 어지간히 없는 우리 부부, 슬쩍 물을 끓였다.-_-;;
점심 메뉴는 다행히도(?) '전투식량'이었기에 주변을 더럽히지는 않았다.
그걸로 양심의 가책과 대충 타협.
주능선과 뱀사골코스(반선)의 갈림길 표시.
뱀사골코스는 요즘 등산객이 줄었는지 주변 잡목이 부쩍 무성해졌다.
다음 포인트인 연하천대피소까지의 거리는 4.2km.
놀라운 마나님.
배낭을 짊어지고 다섯 시간 남짓 9km 넘게 걸었는데 땀 한 방울 안 흘리심.
이곳 화개재에서 연하천까지의 코스가 첫날 산행로 중 가장 힘들다.
화개재를 출발하여 조금 지루한 오르막을 30여 분 오르고 나면,
토끼봉이 나타난다. 아까 지나쳤던 삼도봉과 거의 같은 고도-_-;;;
근데, 표지판을 보니 오잉? 화개재에서 벌써 1.8km씩이나 왔다고?
믿어지진 않지만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법. -_-;;;
여전히 땀은 안 흘리지만 슬슬 마나님의 얼굴에 힘든 기색이 비치기 시작한다.
잡목림이 참으로 꽁기꽁기.
지리산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반달가슴곰의 몽타주-_-;;;
무서워 죽겠다-_-;;
토끼봉을 벗어난 지 근 한 시간 가량 되었건만,
고작 600m 왔단다-_-;;;
아무래도 아까 토끼봉에 나왔던 수치는 낚시였던 게야...
또 한참 후,
이제 400m를 전진했을 뿐.
또 한참 후,
이제 400m를 전진했을 뿐. (2)
터덜터덜...
드디어 400m 전방.
앞서 지나쳤던 화개재처럼 여기서도 상당히 긴 나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휴, 드디어 연하천대피소 도착.
여기까지의 산행을 꽤나 고된 편이었기에 한참을 쉬다보면
벽소령대피소까지 갈 것 없이 여기서 그냥 밤을 보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_-;;
연하천대피소가 여인숙이라면 벽소령대피소는 호텔이라 할 정도로 시설의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이미 돈을 내고 벽소령대피소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만 사직구장 플레이오프 예매만큼이나 대피소예약은 빡센 일이다. 그 현란한 광클의 향연이란.)
표지판엔 안 적혀 있지만 오늘의 최종목표 벽소령대피소까지의 거리는 3.6km.
직전 코스보다는 상대적으로 평탄(?)하다.
금세 700m 줄었다. 역시 좋군.
연하천을 지나 삼각봉을 넘고 나면 쩌~~~~~~~~~~ 멀리 천왕봉이 보일 수도 있다.
보이시는가? 마음의 눈이라도 동원해서 보시라-_-;;;
거리가 팍팍 줄어드니 기분 좋구먼.
지리산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반달가슴곰의 몽타주-_-;;;
무서워 죽겠다-_-;; (2)
아니, 여기서도 고사목이 보이다니?
연하천-벽소령 코스를 달릴 때마다 터닝 포인트로 삼곤 하는 멋진 바위.
위 사진 우상귀 쪽, 바위에 뿌리를 박고 솟아난 소나무를 당겨봤다.
아구구구, 되다~~~
위 바위를 돌아내려오면 보이는 표지판. 앞으로 1.5km.
보긴 이래 보여도 꽤나 가파르고 미끌미끌한 바윗길.
고도 1500m 쯤 되니까 좀 달라보이는 식물군이 보인다.
능선 저 아래쪽에 몰려드는 구름. 아까 뚫고 지나갔던 비구름일까?
저걸 좀전에 넘어온 거란 말이지?
억울해라-_-;;;
이제 거진 다 왔다.
억울해라-_-;;;
이제 거진 다 왔다.
드디어 벽소령 '호텔' 도착.
벽소령대피소의 유일한 불편한 점은,
'식수를 뜨러 가다가 하산할 기세'.
오늘의 만찬.
모든 잔반 및 설거지거리는 모두 뱃속으로 직행시키는 걸로 처리한다-_-;;
총 3박의 일정 중 가장 호화로웠던(?) 2박째를 벽소령대피소 안의 침낭에서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