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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관 새 앨범 맨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 ‘조율’.

노랫말도 신선하고 멜로디가 흥겹다. 후렴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부분은 정말 가요와 국악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또 그 모두에 속하는 특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홍순관은 그런 멜로디를 편안한 목소리로 잘 표현했다. 하지만 ‘조율’이라는 노래가 요즘 노래는 아니다.

홍순관이 처음 부른 것도 물론 아니다. 이 글은 ‘조율’이라는 한 노래에 관한 이야기다.

이 곡을 만든 사람과 지금까지 ‘조율’을 노래했던 몇몇 가수에 관한 이야기다.

 

‘조율’을 이야기 할 때 당연하겠지만 먼저 ‘한돌’을 말해야 한다.
전체적인 가사를 보면 곡에는 이 노래를 만든 ‘한돌’의 가치관이 오롯이 들어가 있다.
그가 줄곧 만들고 노래한 것들은 몇 가지 단어로 말 할 수 있다. ‘환경’, 그리고 ‘평화’. 커다란 의미로 볼 때 환경이 평화에 속한다고 하면
한돌은 아주 오래전부터 평화주의자를 자청했던 거다.
그는 우리나라에 ‘환경’이나 ‘평화’라는 말이 별로 어울리지 않았던 80년대부터 그런 말을 해왔던 사람이다.
한돌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며 시인이고 작곡가다. 하지만 그가 직접 노래를 부른 일은 별로 없다.
대부분 그가 작곡한 노래는 다른 가수가 불렀다.
그런 이유로 그는 정작 그의 노래보다 유명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터’, ‘홀로 아리랑’, ‘개똥벌레’ 같은 노래를 기억 할 때 한돌이라는 사람을
연상시킨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한돌은 국악과 서양 음악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새로운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이전까지 완전히 국악에 치중한 노래는 많이 있었지만 이처럼 그 접점을 잘 챙겨 만든 노래는 없었다.
거기에 뚜렷한 가치관을 담은 시들이 얹히면서 노래는 많은 이들이 쉽게 즐겨 부르는 히트곡이 되었다.
‘조율’은 그런 노래들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다. 이 곡은 1994년 ‘내 나라는 공사 중’이라는 앨범에 실렸는데
한돌 자신이 발표한 다른 앨범들과 함께 역시 크게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10년이 넘게 지나서 2006년 처음으로 만든 한돌의 노래모음집에도
 이 곡은 들어있지 않다. 당시 가요계는 환경이나 평화보다는 댄스와 랩, 힙합 같은 장르가 주류였다.
처음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 즐거운(?) 시점에서 한돌이 내놓는 진지한 말에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조율’이라는 노래를 처음 음반에 넣은 건 ‘한영애’다.
1992년 한돌의 앨범보다 2년 빠른 ‘한영애 1992’ 앨범에서 ‘조율’을 찾아 볼 수 있다.
한영애는 우리나라 가수로써는 드물게 소울과 블루스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가수다.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처음엔 조금 듣기 거북할 수도 있으나 짙은 호소력과 발군의 곡 해석 능력으로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떤 노래라도 한영애가 부르면 그 곡은 바로 한영애의 곡이 되어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조율’은 소울이나 블루스가 아니다.
한영애는 이런 노래를 어떻게 해석해야했을까? 정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늘 그랬듯 그녀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면 되었다. 한영애가 부른 ‘조율’을 들어보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녀는 본연의 그루지한 서구식 창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하늘님’이라는 단어를 확실히 발음했다.
그렇게 부른 한영애의 ‘조율’을 들어보면 그녀의 창법과 한돌의 곡이 만나 전혀 새로운 장르가 태어났다.
이건 한돌의 원래 곡도 그렇지만 실로 놀라온 한영애의 곡 해석능력에 더 높은 점수를 줘야한다.

그 다음 ‘조율’을 노래한 가수는 ‘이정열’이다.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포크록을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처음 노래를 시작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포크음악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가수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포크쟁이’라고 할 정도다.
그는 우리나라가 붉은악마 함성으로 뒤덮였던 2002년 가을 4집 앨범 ‘First Love’에서 ‘조율’을 노래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파격적인 변신을 예고하는 5집 앨범을 앞두고 지금까지 노래했던 포크정신들을 정리해보는 시도를 했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5집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의 4집 앨범이 더욱 돋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정열은 고인이 된 ‘김광석’의 뒤를 이을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가 부르는 ‘조율’은 어떨까.
이정열의 ‘조율’ 역시 한영애와 다르지 않다. 한영애가 그랬듯 이정열도 그만의 포크 창법으로 ‘조율’을 노래한다.
솔직한 말로 이 4집 앨범은 상업적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 앨범에서 -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 다양한 시도를 하고 앞으로 자기가 해나갈 음악 작업을 십분 실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중심에 ‘조율’이 있었다고 하면 심한 말일까. 나는 그렇게 말해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조율’은 확실히 이정열이라는 젊은이가 부르기에는 쉽지 않은 곡이었을 거다. 편곡을 보면 이걸 어떻게 재해석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결과적으론 한돌의 원곡에서 국악 느낌을 살짝 벗겨냈다. 악기 편성도 국악기 보다는 서양 악기 위주로, 박자와 리듬도 포크록쪽에 가깝도록 수정했다. 이런 시도 때문에 원곡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노래로 바뀌었지만 이 역시 이정열만이 할 수 있는 느낌으로 재창조 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른 사람, ‘홍순관’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오래전부터 국악 느낌으로 노래를 불러왔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조율’이라는 노래를 떠올릴 때 한영애나 이정열, 어쩌면 한돌 자신보다도 더 원본에 가까운 해석을 할 수 있는 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홍순관은 그 자신이 낸 첫 앨범 보다는 1993년 나온 ‘황의종 작곡집’에서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이 앨범에서 도종환의 시에 곡을 붙인 ‘억새풀’을 불렀고 ‘고향 진달래’, ‘하얀 이별’등을 불렀다.
모두 우리가락을 입혀 만든 노래들이었고 당시 젊은 홍순관도 어색하지 않은 창법으로 이 앨범에 참여했다.
 ‘황의종’은 우리나라 국악에 있어서 큰 인물이다. 시에 우리가락을 입히는 작업에 탁월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굉장히 많은 곡을 만들었다.
그런 분이 낸 작곡집에 홍순관이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그의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특히 그 앨범에 나온 ‘억새풀’은 나이가 많지 않은 신인 가수가 불렀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맛깔난 가창력을 보여주는 명곡으로 꼽힌다.

홍순관은 1991년 ‘새의 날개’라는 앨범을 내 놓는다. 첫 앨범이기도 하지만 여기엔 주옥같은 곡들이 많다.
유명한 ‘천국의 춤’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을 어떤 범주에 넣을 것인가는 듣는 사람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이 앨범이 국내에서는 드물게 선보인 본격적인 ‘우리 가스펠’이라고 말하고 싶다.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라면 외국 곡 번안에 열을 올리던 당시에 우리가락으로 그런 가치관을 노래한다는 건 굉장히 신선한 시도이며
다시없을 모험이었다. 이 앨범은 꽤 큰 반향을 일으켰고 홍순관이라는 이름도 단번에 알리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후 그는 ‘백창우’, ‘류형선’ 등과 함께 이른바 ‘좋은 노래’ 혹은 ‘평화 노래’ 만들기 운동에 뛰어든다.
1992년에는 그런 시도가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라는 앨범으로 나왔다. 홍순관은 바쁘게 뛰었다.
1994년에는 찬송가를 부른 앨범으로는 굉장한 히트를 기록한 ‘양떼를 떠나서’(절판 되었다가 최근 재발매 되었다.)와 ‘민들레 날고’같은 앨범을
속속 내놓았다. 그리고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그는 ‘신의 정원’ 앨범을 마지막으로 가수 활동을 접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 사이 멈춰있었던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바쁘게 뛰었고 평화 운동가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다음 내 놓은 앨범 ‘나처럼 사는 건 나 밖에 없지’에서는 이미 목소리나 가치관에 있어서
완전히 자기만의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훌쩍 큰 모습을 보여줬다. 이 앨범에서 그는 오랫동안 같이 작업했던 ‘백창우’, ‘한경수’ 등과
 여전히 함께 했지만 완전히 색다른 느낌으로 노래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에 ‘평화’라는 단어가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최근에 나온 앨범 ‘춤추는 평화’에서 부른 ‘조율’은 바로 그런 홍순관의 노래 발자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부른 ‘조율’은 아무 조미료도 넣지 않았지만 굉장히 깊은 맛을 내는 우리 음식처럼, 밥처럼, 식혜 한 그릇처럼 구수하면서도 시원스럽다.
과하지 않게 먹었지만 배가 따뜻하고 든든하다. 그가 새로 해석한 ‘조율’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까.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이었을까.

홍순관이 부른 ‘조율’은 곡조와 목소리가 있는 노래지만, 노래라고 하기보단 거기 나오는 모든 악기들, 아이들과 함께 한 즐거운
놀이 한마당 같은 느낌이다. 홍순관은 앞에 서서 노래를 리드하지 않고 그 안에 녹아들어 장구를 치고 피리를 울린다.
목소리는 장구도 되고, 꽹과리도 되고, 태평소가 되었다가 마지막에 어린아이들 목소리와 어우러져 친구가 된다.
마지막엔 그 아이들이 바로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조율’은 많은 가수를 거치면서 말 그대로 ‘조율’ 됐다. 노래 안에서, 서로 다른 음악 장르와 목소리를 통해 오랫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제 이 노래는 가수의 것이 아니라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여기저기서 불린다.
어떤 사람은 한영애의 ‘조율’을 기억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정열의 ‘조율’을 기억할 거다.
또 어떤 사람은 ‘한돌’, ‘홍순관’의 ‘조율’을 기억할테지만 중요한 건 그 노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다.
꽃이나 철새들도 모두 알고 있는 그런 지고지순한 진리를 잊고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에 큰 소리로 말소리를 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손을 내밀고 또 다른 이들이 그 손을 잡는다면 우리 모두가 원하고 기다리는 그 따뜻한 사랑을 모두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단순한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