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저녁은 되었고...배는 허전하고...

허기를 달래줄 닭꼬치를 사러  밤 라이딩을 하게 된 나.


휘리링~ 밤공기를 가르는 내 자전거가 나를 인도한 곳은 ...

아직도 술기운으로 얼큰한 신림동 거리..

마치 나 홀로 맨정신인듯한 묘한 느낌을 뒤로한 채......

닭꼬치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서는 주문을 한다.

마침 커플로 보이는 두 남녀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스코빌 지수를 적어놓는 집도 봤던듯한데...

언제나 그렇듯...  메뉴엔 좋은것, 독한것, 원자탄 핵폭탄 같은

추상적인 매움의 지수만 적혀있다.



평소 시키던것 처럼..

"독한것"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마침 금발의 여자 3명이서 막 헤어지고서...

그중 한 아가씨가 닭꼬치 집으로 걸어들어온다.

그리고서는 방긋 웃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이쁘구나, 근데 술이 취한것 같구나'


애써 웃어보이면서 점잖게 기다린다.



그녀 갑자기 말은 않고....

메뉴를 보면서 옆사람들의 의견을 묻는듯한 제스쳐를 취한다.



'뭐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옆의 젊은 커플이 먼저 깨달은듯...

금발의 아가씨가 찍는 메뉴판을 번역하려고 한다.


"머스터드"를 찍자

그 커플 "머.스.터.드"

아마도 나도 동시에 "It's Mustard" 라고 이야기 한듯 하다.


곧이어 그 아래의 "좋은 것" 을 고르는 그녀....


당황한 나....

이걸  "맛으로 번역"할때... 뭐라고 해야할지 순간 블랙아웃이 된 나.



재치있는 커플... 그냥 번역 없이 바로 주문을 대신 넣어버리고....

그렇게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 혹은 대충 맞는.... 그걸 골랐다.



그녀는 곧 이어.... 양 옆으로 감사의 웃음을 짓는다.

나도 웃어보인다.





한동안 어색한 정적만이 감돌고....

이상하게 계속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기분이 참 묘하다....

눈이 마주 칠때마다 눈웃음으로 대꾸한다.



뭐라고 말이라도 건네야 하는 상황일까?

학생이냐고... 물으면 너무 cliche 할까?

아까 헤어진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아이스 브레이커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미녀를 보고선 내 대뇌가 생식욕구에 팔려 기능을 잃어버린것일까?


이런 케이스는 그 흔해빠진 미국식 로맨틱 코메디에서만 봐와서...

현실에 적용해볼 생각은 안해봤군하... ㅠㅠ 오호 통재라...




'.... 기다리는 시간이 길구나..'




말 한 마디 안하고서는 웃음만 짓는 그녀가 문득 외로워 보인다.

말 안통하는 타국 멀리까지 와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외로움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말을 꺼내볼까?'



이상하게 자꾸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웃음만 지어보인다.

이 무슨 염화미소가 "밥을 물에 쳐말아먹다 체하는" 스런 장면이란 말인가...


이 웃음이 뭘 의미하는것일까?

여전히도 해석이 안된다.



'내가 맘에 들었었던것일까?'

'술에 취해서 그냥 붙잡고선 영어로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던것일까?'

'내가 원나잇으로 보이는걸까?'
.
.
.
.

해석 불가능한 이야기를 해석하기 위해 머리는 그렇게 힘겹게 프로세싱을 했지만...

적절한 해석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것만 같은 가설들만 쏟아낸다.



그렇게 머리가 복잡해져가는 동안

결국 내 주문은 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옆 커플의 남자아해가 쥔장이랑 이야기를 한다.

"열쇠를 잃어버려서 밤에 헤매고 있어요"

"그럼 오늘밤은 어케 자려고?"

"여친방에 가야죠 뭐..."

.
.
.

후...... 가을 남자의 외로운 마음에 적시 염장 크리를 넣는구나...... ㅎㅎ

속으로 '얌마~ 여친집에서 자려는 수작 치고는 넘 유치하잖어' 라고 이야기해준다.

그래도 뭐... 어리고 순진할때가 아닌가. 좋을 때다...




지불하고서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어색한 미소만 던진 채

허전함만 남기고.... 그렇게 그녀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오만 생각이 다 난다.

무슨 이야기가 좋았을까?

혹시 담에 또 만날수 있을까?
.
.
.
.

부질없는 생각들 뿐..



문득...

홍수 났던 때, 신의 구원만 기다리던 그 노인 우화가 기억 나는구나.......

구원을 스스로 발로 찬 것일까....



텅빈 도로를 라이더는 그렇게 홀로 달리고 있었다.

머릿속엔 오만상 후회와 아쉬움들만을 남긴  채...


그리고서는.....

집에 돌아와서..... 닭꼬치를 먹기 시작한다.

우걱 우걱 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