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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그자가 어떤 식의 선택을 했느냐가 아니야. 그러나 왜 그런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극구 정당화해야 하는 거지? 게다가 정당화뿐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까지 자신의 길을 따르게끔 선동까지 하고 있어."

   이 작품은 '선택'의 문제에 집중한다. 모든 등장인물이 선택의 문제에 집중하지만 단 하나 베체로프스키만은 선택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선택 이후의 행동과 마음에 집중한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떳떳하지 못한, 비겁한 행동을 택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신경 쓰여서 다른 이들을 자신의 선택으로 이끌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이다. 어쩌면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더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일개 개인인 우리가 떳떳하게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약한 인간의 한 면모일지도 모른다.


  자격이 있는 적에게 항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명예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지는 것, 무지를 인정하는 것, 항복하고 복종하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실제 그렇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고 끝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억지로 그런 체하며 사는 것보다 깨끗이 인정하고 자신이 '루저'임을 승복하는 게 더 아름답고 자연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자격이 있는 적에게 투항할 때다. 이 시대 사람들이 아집에 빠지고 자신만을 내세우는 것은 그런 '자격이 있는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용운 시에 나온 문구처럼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한 복종을 하고 싶다.

  우주가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거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지만 지구, 우주의 형태나 원리는 인간의 힘 너머의 정말 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우습다. 과학 발전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마치 그 힘들을 다 제어할 수 있다는 태세다. 하나의 큰 유기체라고 볼 때 우리의 오만은 자연의 제대로 된 방어 앞에 산산히 부서지지 않을까?

  나는 이런 식으로 살 수 없을 것 같다. 스스로를 겁쟁이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1초의 평화도 없이, 자기 아내를 마녀라고 착각해 가며, 사사건건 소스라쳐 놀라며 어떻게 살겠는가.

  나는 두려움을 이기고 정의의 길을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인가? 그것이 가족, 내 주위의 소중한 존재들과 연관된 문제라면 난 쉽게 정의를 선택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기에 두려움을 이기고 사회를 위해 정의의 길을 선택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존경하고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할 나 같은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속죄일 것이다.

  결말과 연결해 이 제목에서 작자들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진 못했다. 하지만 막연히 '세상이 끌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이라는 말 속에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개념이 둘 다 섞여 있다는 느낌이다.

  이 책은 거대한 두려움과의 싸움이다. 아니 두려움에 대한 복종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복종 자체가 불쌍하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하고 자연스러워보이기도 하고 부당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화두를 던진 작가들이 놀랍다. 정의를 위해, 원칙을 위해 외로운 길을 걸어야만 하는 그 모든  사람들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그 친군 혼자인 게 무서운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