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영화 좀 봤다는 영장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인간 참 재미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그냥 재미로 보는 사람이 재미난 영화를 추천해달래는데....

무슨 독일 표현주의 영화나 러시아 몽타주 기법이 잘 드러난  영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추천해주는 걸보면.. 옆에서 듣고 있는 제가 속이 거북해져 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거랑 다수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소위 '아트'하다는 걸작 영화들은 한번 보고 쉽게 알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스토리 외에 오즈 영화 특유의 리듬이 있습니다. 그 리듬을 포착하는 것은 수많은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댑따 "이 영화는 세계 걸작 영화 순위 몇위에 속하니깐 무조건 봐!"라고 말하는 건 "이거 보고 니가 감동 받지 못하면 넌 역량이 딸리는 넘"이라고 말하는 거랑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솔직히 아직 알랑 레네의 영화들이 뭐가 뭔지 모릅니다. 에이젠쉬쩨인의 글을 상당히 읽었지만 그의 영화가 왜 그렇게 뛰어난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들의 영화를 이해하는데 아직 수십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고 영원히 이해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쿠엔틴 타렌티노의 일화 중에 재미난게 있습니다. 이 지독한 영화광이 영화를 무진장 보고 싶어서 결국 비디오 숍 점원으로 취직했을 때의 일화입니다.

손님 중 하나가 누벨바그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1959)를 찾으니 타렌티노가 한 말 "그 흑백 영화 봐서 뭐할려구요.. 그거 컬러로 리메이크한 <브레드레스>(Breathless, 1983)봐요. 리처드 기어가 아주 섹시하게 나오걸랑요~~ "


마찬가지로 류승완 감독이 자신의 최고작으로 성룡 영화를 꼽았을 때... 저는 그게 일부러 쿨한척하는게 아니라 진정한 영화광들은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들 속에서도 자기가 필요한 것을 찾아낸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 영화광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의 진폭은 영화 이론서를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제가 불펜에서 그런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진짜 보는 것은 자기 식대로 보는 것이고, 영화를 순서대로 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자기 식의 영화사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영화광인 것 같습니다.


허문영 평론가가 얼마전 시네마테크 부산 소식지에 재미난 글을 실었습니다. 그 글에는 도쿄대 총장을 역임한 저명한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일화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한 강연에서 "영화에 대한 안목을 쌓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라는 젊은 관객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가리지 말고 영화를 봐라. 나쁜 영화도 함께 보지 않으면 좋은 영화를 보는 안목이 생기지 않는다".

허문영씨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을 받아 이렇게 충고합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봐라. 대신 많이 봐라. 그러면서 소위 예술 영화만 보는 사람이 그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는 <본 아이덴티티>시리즈와 같은 헐리우드 영화를 신물나게 본 사람많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여행자>가 왜 그토록 심금을 울리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저까지 포함해서)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지나치게 영양가만 따져가면서 보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의 편식도 우리의 영혼을 살 찌우는데는 위험할 것 같습니다.

p.s) <7급 공무원>을 나름 재밌게 봤습니다. 팬시점에 진열된 문구처럼 귀엽고 깜찍한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