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영계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문익환 목사가 방북을 하였고, 얼마 못 가 임수경 열사도 방북을 하였고

뒤이어 문규현 신부가 임수경 열사를 동행하러 방북을 하고......



한 마디로 임종석이 전대협 의장으로 날리던 시절이고 시위가 열라 많았던 시절이다.

그리고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시위대 따라 나서서 짱돌 한 번씩은 던지던 시절이다.



철없는 신입생이었지만 뭘 모르고 선배들 따라서 시위대도 따라 다니고 하다보면 시위의 메카니즘을

터득하게 된다.

우리가 기세가 등등할 때는 같이 확! 밀어 주었다가, 저쪽이 지.랄.탄, 페퍼포그 쏘면서 대공세를 펼치고

백골단들 열나게 밀고 들어올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어서 교문안으로 다시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여학생들은 시위대의 맨 뒷부분에 있었고, 시위 나오면서 하이힐 신고 나오는 여학생들도 없다.

죄다 운동화 신고 마스크 쓰고 있다가 밀린다 싶으면 각자 알아서 열나게 교문 안으로 뛰어 들어 오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챙겨주고, 같이 뛰고 그럴 여력이 없다.



한 마디로 '에덴의 동쪽'같은데서 연정훈 ㅆㅂㄹㅁ가 최루탄 가스에 콜록거리고 정신 못차리는-대학교 신입생이

정장차림에 구두 신고...-이다해를 챙겨서 같이 피신하는 건 개뻥이란 소리다.



1,2학년때는 극렬하게 시위를 하던 시절이었지만 군대를 가고 제대해서 학교에 나와 보니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회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근 2~3년간 일부 지역 빼고는 시위가 거의 사라졌고, 신입생들은 대부분 시위 경험이

없었다.




복학하여 사귀게된 여자친구(지금의 마눌)은 학번도 나보다 3학번 후배이고, 학교도 시위 같은것 안하기로 유명한

여대인지라 시위는 고사하고 최루탄 가스조차도 거의 경험이 없는 상태였다.



사귀게 된 지 얼마 안된 화창한 5월 어느 봄날이었다. 우리는 신촌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며 연대쪽으로 이동했고

아마 지금의 세브란스앞 굴다리쯤 되었던 것 같았다.



그날의 시위 주제나 어떤 경로로 그쪽에 시위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예전 민들레 영토가 있는 곳쯤을
 
걸을때 갑자기 우리 앞으로 지.랄.탄이 우수수 떨어지고, 사방이 매캐한 최루탄 연기로 휩싸이고 저쪽에서 학생들이

우루루 뛰면서 우리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군대에서 특수훈련을 받아 동해로 잠수해서 북한땅도 몇 번 다녀온 북파부대 출신인 영계는......마눌한테나 써 먹던

개뻥이고.......하여튼 군 제대후 한결 몸이 날쌔어진 영계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코를 막고 반대방향으로 열나게

뛰었다. 아니, 뛰려고 몇 발짝을 떼었는데......앗차 ! 싶었다.



약 10미터 후방에 콜록거리며 정신을 못차리고 울고 있는 마눌을 두고 온 것이다. 다시 몸을 돌려서 마눌의 손목을

잡고 다시 열나게 뛰어서 신촌기차역까지 와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반사적이고 습관적으로 전경과 백골단을 피해 안전하게 몸을 뺀 것인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기의 손을

뿌리치고 뛰다가 뒤늦게서야 자기를 구하러 왔다고 마눌이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반사적으로, 무의식중에, 잠재의식속에서 혼자 살겠다고 자기를 버리고 도망쳤다가

안되게 생겼으니까 뒤늦게 자기를 구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눌은 이 사태에 심히 섭섭함을 내 비치면서 헤어질 마음까지도 있음을 토로하였다. 영계는 이 사태에 대해서

무릎 꿇고 싹싹 빌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진짜 갖은 아부를 다 떨고서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여튼 이 사건의 후유증은 끝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이다.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딸내미 앉혀 놓고 나보고 들으란듯이 이렇게 말한다.








"**야 너는 네 아빠처럼 혼자 살겠다고 자기 애인 팽개치고 도망가는 남자는 절대 만나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