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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마이어 감독, <맨 온 와이어>(Man On Wire, 2008, 영국 미국 합작)


작년부터 외국 영화잡지에 계속 거론되는 영화가 한편 있었습니다. 제임스 마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가 그것입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그랑프리를 받은 뒤부터 오스카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을 하기까지 무려 27개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저도 궁금해서 수입되기를 벼르다가 결국 포기를 하고 그냥 어둠의 루트로 봐버렸네요.

이 영화는 필립 페티라는 인물에 대한 다큐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치과에 이를 뽑으러 갔다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쌍둥이 건물)가 건립된다는 소식이 난 잡지 기사를 읽고 꿈을 키운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내가 저 건물들 사이에 외줄을 설치하고 걸어갈거야!"하고 말입니다. 소년은 그 건물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꿈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줄광대가 됩니다. 노틀담 성당에서 줄을 타기도 하고 호주의 바닷가 건물에서 줄을 타기도 하면서 명성을 쌓아가죠.

물론 그 줄타기는 불법입니다. 누가 그런 건물에서 줄을 타는 것을 허락하겠습니까? 닉슨의 워터게이터 사건으로 미국이 떠들썩하던 1974년 필립 페티는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침입합니다. 건물 공사인부로 위장하기 위해 신분증과 작업복까지 준비를 하는 건 좋은데.. 1톤이나 되는 장비를 어떻게 104층까지 들키지 않고 가지고 올라가며, 옆 건물로 어떻게 줄을 이을까요?

영화는 필립 페티의 무모한 도전을 남아 있는 필름과 사진, 재현 영상, 증인들의 인터뷰로 보여줍니다. 16밀리로 찍어서 35밀리로 확대한 재현 영상도 인상적이지만 적재적소에 편집해 붙인 실재 영상이 일품입니다(이 영화는 미국 영화편집자상이 주는 최우수 다큐멘터리 편집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필립 페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 사이에 외줄을 걸고 그 위로 걸어가는 순간, 그것은 서커스가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며, 그 순간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 도전 정신에 대한 숭고함을 느끼게 합니다.

911 사건으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그 건물을 걸었던 최초이자 최후의 인간,  필립 페티. 이 영화를 보면 줄에 매달린 건 그가 아니라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