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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찬 감독의 신작 <나는 행복합니다>와 홍상수, 라브 디아즈, 가와세 나오미의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 그리고 코엔 형제의 <파고>를 보려고 아침 일찍부터 영화관을 서성거렸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와 <파고>를 보고 난 뒤, 몸 컨디션이 나빠져서 <어떤 방문>을 포기하고 귀가를 했습니다.

<소름>과 <청연>을 만든 윤종찬의 <나는 행복합니다>는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서 내심 기대를 하고 봤으나, '글쎄요'입니다. 행복하지 않은 환경에 사는 현빈은 현실을 잊을려고 애써다가 과대망상증에 걸리고, 그걸 바라보는 간호사 이보영 또한 현빈과 마찬가지로 불행한 나날을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같이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대게 그렇듯이 우리의 현실이 정신병원과 같음을 애써 보여주려합니다. 하지만 독창적이지도 않고 날카로운 맛도 별로 없습니다. <청연>의 흥행에서 실패 이후 윤종찬 감독이 작은 소재의 영화를 택했으나 <소름>에서 보여줬던 그 솜씨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납치를 다룬 세편의 코엔 형제 영화, 즉 <블러드 심플>, <애리조나 유괴사건>, <파고> 중 단연 으뜸은 <파고>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고 필름으로는 보지 못했습니다. 현재 시네마테크-부산에서는 "오래된 극장"이라는 프로그램으로 20세기 영화들이 상영 중입니다. 그 중에 한편으로 <파고>가 있길래 제가 달려가 봤던거지요.

이 영화는 다시 봐도 너무 멋집니다. 추악한 범죄와는 너무 대조적인 눈덮인 미네소타 지방의 풍경, 장엄한 음악과 끔찍한 살인의 현장, 배우들의 멋들어진 연기, 일상에다 현미경을 들이댄 것 같은 코엔 형제의 꼼꼼한 연출..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 화면에 녹아들게 만드는 영화도 드물 겁니다.

올 겨울에 보고싶은 범죄 영화를 하나 추천해달라면, 저는 단연 <파고>입니다.
왜냐하면 <파고>는 아마도 영화 역사상 겨울과 관련된 가장 인상적인 범죄 영화이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