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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첩첩산중>(2009, 한국)

가와세 나오미, 홍상수, 라브 디아즈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을 보러갔습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이 영화들 중에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을 보러 1시간 동안 차를 몰고 영화관에 갔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답니다. 그래서 세편의 영화 중에 두번째에 배치되어 있던 <첩첩산중>을 보자말자 바로 영화관에서 뛰쳐 나와버렸습니다. 저는 다른 두 감독은 더 이상 흥미가 없습니다.

저는 홍상수 감독 영화 중 지금까지 최고작을 <극장전>으로 꼽습니다. 그 다음이 올해 개봉되었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마지막 장면. 고순(고현정)이 구경남(김태우)를 제주도 바닷가에 놔두고 떠나갈 때 구경남의 시선에 잡힌 제주도 바다의 풍경은 열린 공간이 보여주는 심오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영화 내내 반복되었던 물의 이미지. 즉 땀, 분수, 제천의 저수지가 제주도 바다에 이르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실재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홍상수의 그 다음 영화가 궁금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화면을 열어 놓은 뒤, 그 다음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을 맺을까? 홍상수는 <첩첩산중>이라는 영화 제목에 걸맞게 하늘을 매운 아파트 촌으로 시작에서 모텔 촌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설가 지망생 미숙(정유미)은 사람들 사이를 오고가며 그들 사이의 비밀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됩니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그녀는 그녀가 찾아온 도시에서 나갈 수 없을 것 같이 보입니다. 하늘을 덮어버린 '첩첩산중'의 미로같은 모텔 촌.

이상하게 이 영화는 홍상수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유사해보입니다. 그것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왔다는게 아니라, 영화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 때문입니다. 홍상수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영화에 제목을 왜 그렇게 붙였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집니다. 우물에서 살아남을려고 돼지가 고함을 지르며 발버둥을 칩니다. 우물 밖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웃습니다. 돼지가 점점 우물 밑으로 빠져듭니다. 더 이상 돼지가 보이지 않게되자 우물에는 돼지를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홍상수는 돼지와 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왔습니다. (대략 제가 세어보니) 스물 일곱개의 씬으로 된 <첩첩산중>의 첫번째와 마지막의 하늘을 덮은 아파트와 모텔은 돼지가 우물안에서 우물 밖을 바라본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는 또 다시 홍상수의 다음 작품 <하하하>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