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유난히도 햇살이 눈부신 아침입니다.

그녀와의 약속시간은 오후 2시지만,

아침부터 괜시리 분주합니다.

"청바지에 티쪼가리"가 한때 별명이 될만큼, 옷에는 무관심한 나이지만,

그날따라 몇 안되는 옷들을 온 방안에 늘어 놓으며 고민합니다.

입었다 벗었다 입었다 벗었다..

결국 청바지에 티쪼가리를 입고 침대에 걸터앉아 어젯밤 통화를 떠올립니다.

"내일 잠깐 시간내 줄수 있어? 할말 있어서 그런데..."

몇번이나 고민하고 망설이고, 이래저래 말을 돌리다가 어렵게 한 말인데,

그녀는 의외로 가볍게 승낙합니다.

"그러지 뭐. 나두 너한테 할 말 있었어"

밤새 뒤척이고 공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다 잠이 들었었지요.

약속시간이 가까워옵니다.

청량고추 집어먹은 강아지마냥 좌불안석에 어쩔줄을 몰라합니다.

급기야는 집안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다 아부지의 불호령을 듣습니다.

1시 20분.

평소에 잘 쓰지 않아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몰랐던 향수를 찾아내어,

온몸에 도배를 합니다.

1시 30분. 차를 몰고 집에서 떠납니다.

햇살이 온몸을 간지럽히며 기분을 한껏 고조시킵니다.

오늘따라 뒤꽁무니에 따라붙어 하이빔을 날리는 스카이라인도 예전처럼 밉지 않습니다.

창문을 열고 웃으며 한마디 해줍니다.

"한번만 더 하이빔 날리면 대가리를 똥꼬에 처박아 버릴테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담배한대 피고 있자니, 멀리서 그녀가 보입니다.

무릎위로 살짝 올라오는 청 원피스가 산뜻해보입니다.

그녀가 앉기 편하게 의자를 빼줍니다.

그녀... 뒤로 떽떼구르 자빠질뻔합니다.

다운그레이드에 롱 엣지.... 5점 감점입니다..ㅠㅜ

그녀는 평소에 즐겨 마시던 차이 라떼를, 이상스레 갈증을 느끼던 전 레몬 라임 비터스를 주문합니다.

기분좋게 따사로운 햇살아래, 시원한 음료를 마시니 날아갈듯 합니다.

쓰잘데 없는 신변 잡기 얘기를 잠시 하다가,

본론으로 들어가려 무게를 잡아봅니다.

"어제 얘기한 할 말 말인데..."

그녀, 내 말을 자르고 말합니다.

"내가 먼저 말할께.. 예전에 얘기했던 내가 전에 사귀던 오빠 알지?"

애써서 당황스럼을 숨기며 대답합니다.

"그 한국가서 사무실 열었다는 사람?"

기억해주는게 기쁜듯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응. 그 오빠 사무실에 나 이번에 취직하게 됐어. 나 담달에 한국가"

시간이 멈춰버립니다.

"안그래도 여기서 취직자리 찾느라 힘들었는데 너무 좋아.. 너 할말은 뭔데? 너도 뭐 좋은 일 있어?"

급 당황합니다.

"그게... 뭐냐면..."

침이 마르고 식은땀이 납니다...

"나 이직했어... 좋은데로.."

이직한지 3달도 넘었습니다.

"저번에 말했잖아.. 또 옮긴거야?"

"아하하... 내가 말했었나?"

그녀는 피식 웃어버립니다.

카페를 나서서 잠시 거리를 걷습니다.

햇살은 그날따라 오라지게 따갑습니다.

젠장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