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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티타임 때 동료들이랑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드라마를 즐기시는 나이드신 여자 한 분이 이런 말을  꺼내었습니다.

"있지. 이런 생각 안해봤어? 우리 나라 TV 드라마에는 왜 출생의 비밀이 그렇게 많아? 정말 너무 심하지 않아?"

그러자 같이 있던 분들이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거들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에요. 우연찮게 마주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주인공이 누구랑 만나는 걸 길가다가 우연찮게 다른 사람이 본다든가 이런 억지 설정 말예요"

여기 저기서 말이 이어졌습니다. 불치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너무 많다. 고부간의 갈등도 많고 아이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소재도 많다 등등..

이야기를 듣다가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출생의 비밀부터 생각해봅시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것은 대부분 이런 경우죠. 드라마 상의 주인공들은 원래는 재벌집 아들/딸이어야 하는데 어떤 피치못할 사정으로 가난하게 크다가 원부모와 재회하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자신의 연인들(대부분 화려한 계층의 남녀)과 갈등을 벌이다가 그 역시 재벌 집 아들/딸이라는 출생의 비밀이 벗겨지고 그들과 대등한 위치로 올라가는 것아죠

그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백 그라운드가 어디냐에 따라 계층 상승이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닐까요?
능력보다 자신이 귀속되어 있는 집단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가 되는 사회, 그건 우리 사회의 한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우연성이 남발되는 급작스런 마주침도 그렇습니다. 그건 우리 사회가 어떤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연성이란 운/불운의 갑작스런 대면입니다. 이성에 의한 해결 과정이 아니라 우발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것도 대단히 운명적인 결과입니다. 드라마 전개에서 논리적인 해결이 아니라 희생양이 되거나 한을 품고 죽게 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결국 드라마에서 진행되는 장미빛 이야기들이 결국 부질 없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저렇게 살아봤자. 죽으면 그 뿐이야. 그냥 평범하게 사는게 좋은거지' 이런 식의 자조적 인생관을 체득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들 고부간의 갈등이나 아들을 둘러싼 양육 문제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집단의 힘이 우세함을 보여줍니다. 한국어의 '우리'는 울타리를 뜻하는 '우리'와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개인은 우리라는 울타리에 포섭되는 순간 주체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의 남편/ 아내, 어떤 아이의 엄마/아빠, 어떤 집안의 며느리/사위이지 하나의 인격체로서 표현되기 힘든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래서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우연한 만남에 의해 이야기가 뒤 바뀌며 주인공들은 불치병으로 죽어가며 끊임없이 고부간의 갈등과 아이 양육 문제로 고민하는.. 어쩌면 하나도 현실성이 없는 우리 TV 드라마에서 우리 사회의 (전근대와 근대가 중층결정되어 있는) 사회성을 볼 수 있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