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작은 창으로 바라본 거리에 비 내리고 있었다.

사람 없는 모텔 카운터에 열쇠를 내려 놓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녀는 내게 우산을 씌워 주었다.

차창에는 빗물이 곱게 맺혀 있었다.
시동을 걸고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천천히 닦여 나가는 세상을 잠시 바라보았다.
깨끗한 아침이었다.

그녀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가기를 기다린 뒤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도로는 소리 없는 비에 젖고 있었다.
그녀의 차는 가로수 아래를 천천히 달리다
네거리에서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이 낯설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창문 너머로 본 적은 많지만
실제로 와 본 것은 처음인 도시였다.
꿈속에 가끔 나타났던 그 이름 모를 도시가
아마도 이런 풍경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비 내리는 도시는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빗속을 조용히 달리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기억에 간신히 남아 있는 희미한 노래를 문득 떠올렸다.
스무 살 무렵에 즐겨 듣던 노래였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조그맣게 소리를 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해장국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한 번씩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어떤 날이라는 그룹을 아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안다고 했다.
나는 조금 전 차를 타고 오면서 나도 모르게 어떤 날의 노래를 불렀다는 얘기를 했다.
아주 오래 전에 즐겨 들었던 노랜데
어째서 그 노래가 갑자기 떠올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 든 그 모습 좋아
바람에 날리는 풀잎처럼
길 위에 구르는 작은 돌처럼
이 빗속에 가만히 가만히 잠기면
지난 밤 거친 꿈은 빗물에 씻겨 내리고
내 작은 가슴에 울려 퍼지는 빗소리


그녀는 이 해장국집을 지날 때마다 내 생각이 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억은 거리에 남는다.
나 역시 그러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어떤 거리, 어떤 나무, 어떤 찻집...
또 언젠가는 잊혀지기도 하겠지.

그녀는 계속 얘기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그런 건 모두 잊고
이 장소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얘기를 했다.
그 소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대목이어서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게끔 페이지까지 외운 적이 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몇 페이지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의 차가 도로로 빠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는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차를 몰고 나갔다.
고속도로에는 비가 많이 쏟아졌다.
앞서 달리는 자동차의 물보라가 차창 가득 흩뿌려졌다.

몇 대의 차를 추월했고
몇 대의 차가 추월했다.

터널을 지날 때는 갑자기 비가 멈춰서 그런지
마치 진공의 유리관 속을 미끄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휴게소 편의점에서 생수 한 통을 사서 마시고
비가 들지 않는 벤치에서 담배를 한대 피웠다.
빗발이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었다.
멀리 있는 산의 꼭대기는 비구름에 가려 있었다.

나는 차문을 닫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간신히 떠오른 옛 노래를
다시 한 번 나지막하게 불러 보았다.

'비 오는 날이면...'











*

심심하신 분들 읽으시라고 올렸습니다.
그냥 뭐 일기를 약간 다듬은 글이네요.
19금 부분은 생략해서 재미가 없을지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