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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저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종내 저 물을 건너시네.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이를 어찌할꼬.

'공무도하가'에 나오는 귀절들이다. 어렴풋이 외우고 있는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나
대강의 뜻에는 그르지 않으리라. 물을 건넌다는 것은 이편과 저편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되돌이켜 넘을 수 없는 물의 경계는 바로 죽음을 상징한다. 생자와 사자는 엄연히 그 속함의
영역이 다르므로 물의 기슭까지 전송은 할 수 있으나 생자는 비록 그 정이 깊다 하여도 경계를
함께 건널순 없다.
 
한참이나 늦게 받은 연락을 업고 병원 영안실에 도착하였을 쯤엔 벌써 새벽 2시가 넘고 있었다.
초행이었으나 의례의 짐작대로 건물 뒤켠 음습한 곳에서 쉬이 영안실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상례화 되어 죽음을 맞이 하는 장소로 병원 영안실이 낯설진 않지만 거길 찾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조금은 아쉬운 듯한 감정을 느낀다. 나자신도 별로 영안실 외의 곳에선 상례를 접한
경험은 없으나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본 몇번의 상여나감이 상례의 전형으로 내게 인식되어있기
때문인것 같다.

그러나 집에서 치르는 상이든 영안실에서의 그것이든 전반적인 준비나 분위기는 별로 다름이
없다. 집안에 상이 나면 가장 중요한 준비중 하나가 바로 음식장만인 듯 하다. 우리나라의 장례
라는 게 어찌보면 잔치의 예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붉적한 마당에 음식이 진하고 고성과
웃음이 흔한 것이 담너머로 언듯 들여다 봐선 잔치와 초상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음식의 장만 또한 망자의 제사를 위한 것이라기 보단 손님접대를 위한 쪽에 더 기울어 있다고
보여진다. 잔치든 초상이든 손님이 적은 것은 모양이 좋지 않으므로 둘다 음식이 풍성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리라.

영전에 들렀으나 상주인 선배는 사흘간의 힘든 제례 때문이었는지 한쪽 구석에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절만 두번하고 영전을 물러나왔다. 일단 상갓집에 들면 영전에 재배를 하고 뒤이어
상주와 절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절끝에 간단한 위로의 말을 건냄이 일반적인 모양이다. 영전에
조문객이 들면 상주는 곡이라 일컫는 우는 소리를 내야한다. 또한 조문객이 피붙이이거나 생전에
가까운 사이였을 경우엔 같이 곡을 하기도 한다. 슬픔이란 소리로 표현되었을 때 그 깊음이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되어 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상주인 선배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내야 적당할까 오는 길에 조금 걱정을 하였는데 선배가 지친
심신을 잠으로 달래고 있었기에 쉽지않은 경우를 넘겼다 싶어 저윽이 안심되기는 하였지만 막상
상주와 일견을 나누지 못함이 좀 아쉽기도 하였다. 조문객의 자리로 마련된 영안실 홀에서 간만의
지인들을 만났다. 상을 당한 이가 6년위의 선배라 거기서 만난 지인들도 모두 제법 깃수차가 나는
선배들 뿐이었다 벌써 이틀이나 사흘째 와 있었는지 모두 행색이 후줄근해 있었다.

술을 몇순배 하다 어느새 자리는 노름판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장례식에 가면 언제나시피 볼수 있는
것이 바로 노름판이다. 밤새도록 상가를 상주와 함께 지켜주는 그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
이기도 하지만 또 나름대로의 의미도 있지 않나 싶다.쉽게 가라앉을 수 있는 상갓집의 분위기를
지탱하고 상을 당한 가족들의 슬픔을 조금 쯤 무마하기 위해선 손님들이 약간쯤은 떠들석하게 자리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데는 역시 술과 노름이 가장 제격인 것이다.
 
이윽고 해가 밝아 발인의 때가 되었다. 출상하기 전에 먼저 제사를 지낸다. 가족들이 주축으로 지내는
것이나 장례에 참석한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 해도 무방하다. 제사가 끝나면 드디어 관이 나간다. 관은
가족들이 들지 아니하고 상주의 친구들이 드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여섯사람이 양쪽에서 광목으로
매듭을 한 관을 든다. 관앞에 상주가 가며 그 뒤를 관이 가고 그 뒤에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따른다.
행렬의 맨 앞엔 위패나 망자의 사진이 들려지는데 망자가 연세가 있어 손자가 있을 경우 어려도 그
손자가 맨 앞을 선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겠다.

예전엔 꽃상여에 관이 놓여지고 그 상여가 들려져 장지까지 갔으나 요즘은 대부분 장례차에 실려 움
직인다. 여기서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 전에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상여는 문을 나선 후에 천천히
움직이며 조금씩 가다 멈추어 쉬고 또 가다 멈추고 쉬고한다. 그 속도는 집에서 멀어질수록 빨라지며
쉼의 횟수는 줄어든다. 죽은 자의 떠남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란다. 하지만 요즘같이 차에 관이
실려나가면 여러가지 이유로 장지까지 쉬지않고 휘하니 가버리게 된다. 앞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장례차를 뒤에서 따르면서 그 자발스러움이 좀 체변없어 보이고 또 제법 아쉬웠다.

이번에 선배는 부모양친이 한날에 가셨다 한다. 내가 참석한 곳은 모친의 장례였다. 여하간의 집안내
사정이 있어 장례를 따로 치르는 것 같았다. 어쨋든 부부가 한날에 돌아갔으니 호상이지 싶다. 그리고
본인도 고생없고 자식들도 고생없게 수월히 가셨다하니 더더욱 호상이다. 상을 놓고 호 불호를 가름이
가소롭지 않은 바는 아니다. 허나 죽음과 관계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여러 모양중에 좋고 나쁨이 없을
리 없는 것이다. 악상의 첫째로 침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다. 구구히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당연하지 싶다. 그리고 객사 또한 악상이라 하며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죽음을 맞이함도 또한 악상
이다. 임종시까지 본인의 고생이나 가족의 고생이 심해도 좋은 상축에는 못든다. 반면에 천수를 누리고
자신의 집에서 편안히 죽음을 당했을 경우엔 당연히 호상이다. 부부가 한날에 감도 당연히 호상이며
가족이 임종을 지켜주면 것도 그렇다. 그런데 모든 호상의 경우를 갖추었어도 남은 가족이 경제적으로든
다른 이유로든 장례를 치르기가 제법 힘이 들 경우엔 호상으로 치지 않는단다.

내가 자리를 했던 선배의 모친상은 여러면에서 호상이지 싶다. 다른 이유도 그렇고 연세의 경우도 조금
더사셔도 되지만 모자란 나이는 아니라 한다. 선배 모친의 주검은 화장을 하기로 했단다. 화장하여
어머니의 고향에 외할아버지의 유골을 뿌린 곳에 같이 뿌릴 계획이라한다. 그래서 이 장례행렬은 먼저
화장터가 있는 벽제가 일차의 목적지다. 화장터에서 관을 내려 로에 넣을 때 다시 우리가 들어야 하므로
선배들과 나는 화장터까지 가야했다.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우리들 차가 장례행렬을 놓치고 또 화장터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 길을 몇번 잘못들고서야 도착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관이
들어간 뒤였다. 그쪽도 우리가 없어서 당황하다 시간에 쫓겨 다른 사람들이 관을 들어 넣었다 한다. 우리들
꼴이 좀 우습고 낭패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영안실에서도 그렇고 화장터에서도 그렇고 어째 상가가 상당히 많은 듯 싶었다. 한
선배에 말에 따르면 봄에 초상이 많이 난다고 한다. 노인들이 겨울은 제법 앙골지게 나지만 봄을 맞으면
그만 긴장이 풀려 쉬이 돌아가신다고 한다. 듣고보니 그럴법도 했다. 부산에 있을 때 화장터 근처를 몇번
가본적은 있지만 실제 화장터를 들어와본적은 처음이었다. 벽제 화장터는 불광동 쪽에서 의정부 쪽으로
얼마 못가 위치해 있다. 그 단어가 주는 어딘지 모르게 야릇한 느낌과는 달리 거긴 상당히 정갈하고 좋은
시설로 꾸며져 있었다. 일단 관이 로에 넣어지면 상족들은 로와 조금 유리된 곳에서 창을 통해 들여다보며
기다리게 되어있었다. 참관실인가 하는 묘한 이름의 장소였다.

들여다본다 곤 하나 보이는 거라곤 관이 들어가는 입구의 엘리베이터 문같은 것이 닫혀잇는 것 정도 뿐이었다.
어릴 때 들었던 화장터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들이 생각나 나도 어깨 너머로 기웃거려 보았지만 상상과는
차이가 많았다. 분주하고 떠들썩했던 상가의 분위기는 여기 화장터에 와서 상당히 가라앉는다. 하지만 죽음이나
슬픔의 침잠이라기 보단 지쳤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함이 정확한 듯 하다. 일반적인 장례라는게 상족들이 사흘
동안 거의 뜬눈으로 보내다 시피 하므로 발인할 무렵엔 지칠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상주는 영전앞을 뜬 눈
으로 사흘을 지켜야 하므로 발인 때엔 심신이 다 늘어짐이 당연하다. 어쩌면 우리의 장례가 그러한 강행군을
하도록 짜여진 것은 상족이 슬픔을 깊이 느낄 새가 없도록 하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하다.

상을 당한 선배는 그 곳 화장터에 다달았을 쯤엔 서걱한 수염에 늘어진 얼굴등 행색이 많이 처져 있었다.
화장이 끝나기 까진 제법 두어시간이 걸린다 한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상족들의 뒷모습에서 이제야 서서히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망자의 죽음이 이제 사실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황망한 울음이 아니라 그대로
굳어버린 듯 움직임이 없는 그들의 어깨가 그것을 말해준다.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가족만의 시간이다. 우리는
자리를 떠야함을 느낀다. 제각기 가야할 자리와 할 일들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간섭하거나 동참할 자리가
더이상 아니기도 하다. 서로의 행선지를 맞추면서 조용히 그 자릴 빠져나왔다.

두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화장터를 빠져나오면서 우리는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낯선 곳엘 갔다 돌아
가는 길엔 어쨌든 한번쯤 돌아보고 싶어지는게 보통이지만 화장터의 진입로를 빠져나오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선배의 차에 의탁해 집으로 가면서 늦은 아침의 따가운 햇살과 눈꺼풀을 눌러오는 졸음에
계속 시달렸다. 멍한 상태가 되어 있었지만 어제부터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오히려 더 집요해져 갔다. 그렇게
멀지 않은 시간안에 나도 또한 부모님의 상을 당하게 되리라. 좀처럼 상상되지 않는 일이지만 분명 그러할
것임은 말이 필요없다. 가슴이 거북해지는 생각을 떨치려고 고개를 치켜들었을 때 나는 이미 지하철을 타고
있었고 벌써 내릴 역이었다. 닫히는 문을 겨우 비벼 뚫고 내리며 빨리 집에 가서 눈을 붙여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숙집 마당에 들어서며 얼른 내 방으로 내치려 했다가 문득 뒷덜미를 잡는 생각이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
힌 모직 장갑을 꺼냈다. 관을 들 때 꼈던 장갑이다. 주머니에서 라이타를 꺼내 불을 붙였다. 잠시 들고 불이
제대로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바닥에 놓았다. 검은 연기가 가만히 하늘로 오른다. 다 탈 때까지 한동안 그 작은
불길을 내려다 보았다. 다 탄 재 찌꺼기를 수습해 문밖 대로에 내다 버렸다. 장례에 쓴 자잘한 소품들은 끝나고
난 다음엔 집에 남기지 않고 태워야 한다. 그리고 그 잔해들도 집밖에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조문은 끝난다.
 

                                                                                                                                                       ... zzt

꽤 오래 전에 쓴 글입니다. 대학 졸업무렵이던가 처음으로 관을 들었을 때의 이야기네요. 장례의 끝 마무리에
손을 보탰던게 나름 인상적이었던지 그 당시 돌아와서 바로 글을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시골 마을에서 자란
지라 어린 시절 몇 번 꽃상여 나가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장 마지막이 중학교 무렵 큰 이모께서
돌아가셨을 때인데 바로 일가붙이인지라 그 묘하게 화사하면서 처연한 꽃상여의 영상이 지금도 가끔 가끔
머리에 떠오르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