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제가 아내랑 두 번째 보금자리를 마련했던 곳은 20평짜리 임대 아파트였습니다. 

신혼 생활을 제가 자취하는 10평 남짓한 원룸에서 하다가 스무평으로 옮기게되니 나름 기분이 좋더군요.

앞에 살던 분이 나가고 제가 새로 계약을 하게되었는데 이 분이 정상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아파트 구조가 어떤가 싶어 정상만씨가 안계실 때 부동산 소개를 하시는 분의 안내로 집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정상만씨는 독신이었습니다.

별다른 가구도 없고 책상하나, 대학때 전공 서적으로 보이는 책 몇권, 그리고 배달 음식가게 광고 스티커가 잔뜩 붙은 냉장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실에 놓여있는 인라인스케이트였습니다.

주인 없는 공간을 인라인 스케이트가 지키고 있더군요.


몇일 뒤 부동산 소개소에서 정상만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 분 성함을 듣고 얼핏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사람 이름이 웃기네.. 정상으로만 올라가라고 정상만인가? 아님 정상만 상대하고 비정상은 상대 안한다고  정상만인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던거죠.

키가 크고 선하게 생긴 사람이 소개소로 들어 오더군요.

약간 수줍은 웃음에 큰 인사를 하고 별다른 조건도 없이 소개소 업자가 하자는대로 순순히 서류에 사인하더군요.


소개소 주인이 남은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제가 물었습니다.

인라인 타세요? 그거 근사해 보이던데...

정상만씨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었습니다.

재밌어요. 주말이면 그걸 탄다고 시간 다보네요.

제가 주책 맞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자 친구랑 타세요?

아뇨.. 여자 친구 없어요.. 예전에는 있었는데..

그 말 끝이 참 슬퍼보였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새로 이사가는 곳은 직장 근처인가요?

아.. 아뇨. 페루로 갑니다. 제 친구가 거기 사는데 그 곳에서 새출발하고 싶어서요.

와.. 먼 곳으로 가네요. 새로운 곳으로 가서 살려면 두렵지 않으세요.

정상만씨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쓸쓸하게 쳐다보며 제게 말했습니다.

아뇨... 이제 여기가 싫네요. 


그 말이 전부였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그 때가 4년전 쯤인데 페루에 정착해서 잘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혹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다른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정상만 바라보고 올라가게 하지는 않았는지... 정상만 사람으로 취급하고 약간이라도 비정상으로 보이는 사람은 무시한 사회가 아니었던지..

그래서 정상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분이 여기 살수 없었던 것이 아닌지..


페루라는 나라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정상만씨가 떠오릅니다.
정상만씨는 근사한 아가씨랑 페루의 수도 리마 거리를 인라인 스케이트로 활주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P.S) 정상만씨.. 당신의 이름은 산악지대인 페루에서 살게 될거라고 붙여진 이름인가 봅니다. 행복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