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제가 관련 회사에서 재직하면서 작성했던 FPS라는 게임의 역사를 다룬 글입니다. 완료된 프로젝트이고 현재도 연재중인데, 나름 완료가 된 글이라 베팍 회원분들 읽어보시라고 소개해 봅니다.

FPS라는 장르는 RPG나 ADV, 혹은 SLG같은 전통적인 게임 장르보다 훨씬 늦게 대중들에게 소개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FPS’라는 장르의 정립이 정확해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겠다. 때문에 이 장르의 역사는 다른 게임들에 비해 상당히 짧은 편이다.

FPS. First Person Shooting(1인칭 슈팅)의 준말인 이 장르는 80년대 후반 게임에 대한 ‘시점’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90년대 초부터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게임들을 일컫는 말이다. FPS의 전 세계적 성공에 이어 3D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며 게임의 시점이 더욱 다양화되어 이제는 ‘나쁜 그래픽은 있을지언정 보기 힘든 카메라 앵글은 용서치 못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게임의 시점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물론 최근에는 거의 풀폴리곤 3D로 360도 회전이 가능하지만). 현대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시점, 이 시점으로 창조된 최초의 장르가 바로 FPS인 것이다.


△ FPS의 강세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배틀필드2
이제는 다른 유명 장르들과 함께 유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장르 중 하나가 된 FPS. 그 옛날 5.1인치 디스켓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온라인 게임으로까지 그 영역을 급속도로 확대한 이 FPS는 이제 게임을 논하면서 빠질 수 없는 장르가 되었다.

15년이란 짧은 역사 속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FPS. 그 격동의 역사를 살펴본다.


- ID소프트의 태동
‘컬트 히어로(Cult Hero)' 알폰소 존 로메로(Alfonso John Romero)는 1979년에 처음으로 애플과 애플2를 접하면서 게임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신출내기 게임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는 울티마 시리즈로 유명한, 리차드 게리엇이 설립한 오리진 시스템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하게 된다.

로메로는 오리진 시스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애플2 잡지인 Nibble에서 3년 연속 올해의 인물로 선정할 만큼 대단한 역량을 발휘한 프로그래머였으며, 오리진 시스템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프로젝트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로메로는 리차드 게리엇의 밑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오리진 시스템에서 블루스카이 프로덕션(Blue Sky Production)에서 개발하는 스페이스 로그(Space Rogue)의 작업을 진행하던 도중 자신이 직접 회사를 설립해서 입지를 다져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리진 시스템을 그만둔 뒤 인사이드 아웃 소프트웨어(Inside Out Software)를 설립한다.

로메로는 자신의 첫 회사에서 마이트 앤 매직2(Might&Magic2)의 플랫폼 컨버전을 첫 번째 작업으로 시작했다. 오리진 시스템에서 컨버전 작업을 능숙하게 해 냈던 그는 동업자나 직원들 없이도 혼자서 작업을 원활하게 잘 할 수 있었지만, 일을 맡긴 에픽스(Epyx)사는 일방적으로 모든 작업을 취소시키고 신작 개발에 자금을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결국 로메로의 첫 번째 회사는 치명적인 자금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당시 어느 정도 이름이 나 있었던 게임 개발 회사인 소프트디스크(Softdisk)에 입사한다.


△ 킹덤 오브 크롯. 사실 무슨 게임인지는 필자도 잘 모른다
로메로는 소프트디스크에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퍼블리싱을 하면서 게임 부서 설립에 관여를 하게 되는데, 이 때 훗날 ID소프트의 창립멤버인 톰 홀(Tom Hall), 케빈 클라우드(Kevin Cloud), 그래픽부서에서 일하던 아드리안 카맥(Adrian Carmack)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여러 게임 회사의 입사 제의를 거절하며 캔자스의 피자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이후 함께 주옥같은 FPS게임들을 만들며 역사를 창조해 낸 프로그래머 존 카맥(John Carmack)과도 운명적인 만난다. 당시 소프트디스크는 외부 개발자와 계약을 맺고 그 게임을 자신들의 이름을 빌어 발매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들은 고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카맥에게 두 번이나 입사 제의를 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존은 로메로를 만나고서야 소프트디스크에 입사를 하게 된다.

당시 소프트디스크 내 게임팀을 조직한 그들은 셰어웨어 게임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셰어웨어 게임은 당시 어포지(Apogee)사에서 만들어 낸 킹덤 오브 크롯(Kingdom of Kroz)이라는 게임을 시작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당시 전혀 돈이 되지 않았던 셰어웨어 게임은 스캇 밀러(Scott Miller)라는 인물이 고안해 낸 방식을 이용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바로 첫 부분을 무료로 플레이 할 수 있게 해 주고 그 다음 부분부터 유료로 전환시키는 방식이었다. 외고집스러운 성격의 로메로는 셰어웨어가 돈이 되지 않을뿐더러 인기를 끌 수 없는 게임들이 임시방편으로 택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스캇이 그를 직접 찾아가 킹덤 오브 크롯이 벌어들인 수익을 보여주며 설득을 한 끝에 결국 팀원들과 함께 셰어웨어 게임을 만든다. 톰 홀이 15분 만에 고안해 낸 게임이 바로 커맨더 킨(Commander Keen)이다.



△ ID소프트를 설립하게 만든 커맨더 킨
91년, 그들의 첫 번째 셰어웨어 게임인 커맨더 킨을 어포지 소프트를 통해 발표한 로메로와 존 카맥 일행은 한 달 만에 만 오백달러를 벌어들이게 된다. 그리고 소프트디스크의 장래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게임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낸 그들은 소프트디스크에 6개월간 두 달에 한 번씩 게임을 제작해 주기로 하고 소프트디스크를 그만둔다. 그렇게 그들의 의기투합 하에 설립한 회사, FPS게임의 역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회사가 바로 ID소프트이다.


- 최초의 FPS, 카타콤 시리즈
존 카맥과 로메로가 아직 소프트디스크에서 일하던 시절, 그러니까 소프트디스크 내 게임 팀을 조직한 당시 존과 톰 홀은 애플2용으로 카타콤(Catacomb)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카타콤에서 그들이 중점적으로 시도했던 기술은 바로 PC로 부드럽게 스크롤되는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개발에 들어간 당일 새벽 5시에 이 엔진을 이용하여 당대 최고의 액션 게임이었던 슈퍼마리오의 첫 번째 스테이지를 PC로 이식하는 샘플링 작업까지 마치는 괴력을 발휘한다. 로메로는 이 놀라온 컨버전의 작업물을 닌텐도에 보여줬지만, 닌텐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결국 이 게임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재탄생한다).

그렇게 만들어 낸 엔진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카타콤3D(Catacomb3D・1991)였다. 존은 소프트디스크에게 만들어 줘야 할 게임 3개를 순식간에 만들어 버리고 난 뒤 3D 게임엔진의 제작에 대해 고심을 했고, 결국 호버탱크 원(Hovertank One)이라는 게임과 함께 3D게임엔진을 이용하여 카타콤의 3D엔진 버전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존이 만들어 낸 이 2개의 게임은 모두 1인칭 3D슈팅게임이었고, 유저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다.


△ 카타콤(왼쪽)과 카타콤3D(오른쪽)의 모습.
이듬해 존은 카타콤 어비스를 만들며 최초의 FPS시리즈를 완성시킨다. 카타콤3D는 이후 3D엔진이 세계 게임업계의 미래를 주름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꿰뚫어 보고 그 근간을 만들어 낸 존 카맥의 선견지명이 빛난 작품이었지만, 이후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게임은 카타콤3D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게임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최초의 FPS', 'FPS의 효시’라고 알고 있는 그 게임을 91년에 만들어 낸 것이었다.


- 진정한 FPS의 시작, 울펜슈타인 3D

△ 이 게임이 원조 캐슬 울펜슈타인.

당시 놀라운 개발력과 속도, 그리고 기술의 진보를 보인 존 카맥과 로메로는 귀찮은 소프트디스크에 약속한 3개의 게임의 개발을 가장 빨리 해치워 버린 뒤 3D엔진을 이용한 본격적인 게임 제작에 들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둘은 실라스 워너(Silas Warner・신장병으로 2004년 2월 26일 타계)가 디자인한 고전 전략게임 캐슬 울펜슈타인(Castle Wolfenstein)을 새롭게 만들기로 합의한다.

1991년 만들어진, 캐슬 울펜슈타인의 리메이크작으로 만든 울펜슈타인 3D(Wolfenstein3D・1991)는 전략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재하고 순수한 슈팅게임만으로 제작되었다. 로메로와 존 카맥은 나름대로 전략적인 요소를 생각하여 구석에 숨어있는 적들까지 표현했으나, 사실 전략이라기보다는 슈팅에 완전히 치우친 게임으로 등장했다.

아무튼 지금 보면 총 디자이너 로메로가 말한, ‘전략적 요소’라고 한 구석에 있는 적이 배경 도트와 분간이 안 돼서 보이지 않는 울펜슈타인 3D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또한 ID소프트의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총구 하나만을 가지고 앞에 등장하는 적들을 물리치는 이 게임 방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받게끔 했으며,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ID소프트는 울펜슈타인3D를 발표하여 10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으며, 차기작을 준비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 당시로썬 상당했던 울펜슈타인 3D의 모습
ID 소프트는 울펜슈타인3D로 다져 놓은 입지를 발판으로 새로운 게임 장르의 역사를 긋는 게임을 만들게 되는 것이었다.


1994년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