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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없다"고 큰소리 치지만 "외환보유액 이미 바닥났다" 주장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즈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까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들의 문제제기는 거의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단기 외채가 너무 많아서 만기 연장이 안 될 경우 채무 불이행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2천억달러 이상 있지만 최악의 사태를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 월스트리트저널 3월5일, "한국, 신뢰의 위기".

월스트리트저널은 5일 "한국 정부가 위기를 은폐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몹시 격분한 나머지(blue in the face)' 자국 은행의 건전성을 알리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판적인 지적을 반박하고, 좋은 소식만 뿌리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 신문은 "한국 정부의 이같은 대응은 원화 가치 하락을 막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여전히 "우리나라 단기 외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며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다"며 외신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거듭된 해명에도 오히려 시장의 불신은 더욱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5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1594원까지 치솟았다가 내려왔고 종합주가지수도 한때 1000선이 무너졌다. 정부가 부랴부랴 달러화를 풀면서 환율을 끌어내리기는 했지만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획재정부가 부랴부랴 5일 외신 기자들을 모아 놓고 간담회를 연 것도 이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외신 기자들의 관심은 "한국 정부의 외채 상환 능력에 문제는 없느냐"는 것이었다. 윤증현 장관은 "대외의존도가 높다 보니 한국의 대외 지불 능력을 의심하지만 2천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에다 900억달러의 통화 스와프, 1천억달러의 정부 지급 보증 등이 있어 단기 외채 상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외신들은 단기 외채가 과연 안심할만한 수준인가 여러차례 물었지만 윤 장관은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계속했다. 적정 환율 수준을 묻는 질문에도 "환율 변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그쳤다. 파이낸셜타임즈 송정아 특파원은 최근 정부가 이 신문의 보도에 반박 자료를 낸 것과 관련, "팩트가 아니라 관점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며 정부의 해명에 여전히 불신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김광수연구소가 최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가용 외환보유액이 이미 바닥났다"고 주장한 것도 주목된다. 이 연구소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2천억달러는 그야말로 장부상 수치일 뿐이며 매각이 어려운 자산이 많고 또 거액의 투자손실이 발생해 실제로 현금화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이와 관련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하면서도 공식적은 대응은 하지 않았다.

매일경제는 6일 "한국은행들 정말 문제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올해 만기 상환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문제는 은행권 외채의 장단기 미스매칭이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은행들 역시 단기 차입으로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중장기 차입금을 계속 단기로 돌려막다가 지난해 말처럼 단기 시장마저 얼어붙는다면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매일경제 3월5일 3면.

국내 언론은 대부분 정부 발표나 외신 보도를 단순 인용하는 수준에 그칠 뿐 아무런 구체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 탓이 크지만 역외 환투기 세력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일부 외신들이 제기한 3월 위기설이 역외세력의 투기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면서 "역외 시장에 대한 정보력을 확대하고 외환시장 규모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SK증권 김영준 연구원은 환율 상승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동유럽의 디폴트 리스크 확대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계속되고 있고 둘째, 대외채무 3662억달러 가운데 서유럽 비중이 57.1%로 동유럽 리스크가 확산될 경우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큰데다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도 계속 빠져나가고 있고 셋째, 2월 무역수지가 32.9억달러의 흑자를 내기는 했지만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데다 경기 둔화도 장기화하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우려에 아무런 믿을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언론 역시 외신 보도를 오보 수준으로 평가 절하하면서도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매일경제의 심층적인 분석이 돋보였고 다른 신문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분위기다. 과도한 우려는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시장이 안정을 찾기까지는 한동안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지켜보기 답답한 것은 외신기자들 뿐만이 아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