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유가의 전통적 화두 중에 하나가 ‘안자(顔子)가 즐거워한 것은 무엇일까?’이다. 안자는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다. 공자는 그에 대해 “어질구나! 안회여. 한 대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동네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런 속에서도 그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고 살아가니, 어질구나! 안회여.”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위에서 보이듯, 안회는 달동네에서 식량이 자주 떨어질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꽁보리밥 한 그릇을 맹물에 말아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돈벌이에 급급해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에게 돈보다도 더 소중한 ‘그의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했지만 행복할 수 있었다.

  그의 즐거움은 어디서 온 걸까? 그의 독백을 들어보자. “우러르면 더욱 높기만 하고, 뚫고 들어가려 하면 더욱 견고했으며, 바라보면 앞에 있다가 문득 뒤에 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차례차례 잘 인도해 주셔서 글로써 나를 넓혀주셨고 예로써 나를 묶어주셨다. 그래서 공부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만둘 수도 없게 되어 나의 재주를 다해 노력했더니 우뚝 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안회는 처음 공부할 적에 높은 담장을 마주하고 선 것처럼 깜깜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좌절을 맛보았다. 그러나 다시 용기를 내 노력했더니 무엇이 보이는데, 앞에 있다가 갑자기 뒤에 있기도 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차근차근 공부를 하다 보니,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분발해 있는 힘을 다했더니, 우뚝 선 것이 있었다. 비로소 무엇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안회가 발견한 우뚝 선 것은 자신이 평생 걸어가야 할 목표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곳을 향해 그의 길을 갔기 때문에 그는 즐거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즐거움’은 자신의 목표를 찾아 그 길을 가는 데서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자신을 평하기를 “그 사람됨이 발분하여 밥 먹는 것도 잊으며, 어떤 일을 즐거워하면서 근심을 잊고 살며, 늙어가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그는 제나라에서 순임금의 음악을 배울 때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고 한다. 고기를 먹어도 그 맛을 못 느낀 것은 마음이 어디에 흠뻑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한 것을 말한다. 안회도 자신의 재주를 다해 매진함으로써 우뚝 선 것을 찾았다. 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 바로 즐거움을 얻는 방법이다.

  공자가 안회의 삶을 칭찬한 말에는 빈한함과 즐거움이라는 두 주제어가 있다. 빈한함은 돈이 없기 때문이고, 즐거움은 자신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부귀는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것’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그는 또 “부(富), 만약 노력해서 그것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는 마부의 일이라도 나는 또한 그 일을 하겠지만, 만약 노력해도 그것을 구할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리라.”라고 하였다.

  공자는 부유하게 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지만, 다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무모하게 그것만을 추구하며 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 살겠다고 하였다. 공자의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서 발원한다. 돈벌이에만 급급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따라 살자는 것이다. 즉 ‘나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 공자의 이 말씀은 의도적으로 한 중대발표다. 모든 사람들이 돈만 벌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허둥지둥 날뛰는 세태를 보고서, 나는 돈에 노예가 되어 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바를 추구하며 살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모두 부귀를 원한다. 그런데 인간의 소유욕은 끝이 없어서 가질수록 욕심이 더 생긴다. 1억 원짜리 주택복권이 어느새 수십억 원을 타는 로또복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온통 로또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이것이 돈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대박을 꿈꾸는 신풍속도이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도와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나는 아직 복권을 한 장도 구입하지 않은 것을 내 인생의 자랑거리로 꼽는다.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아 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 소망과는 정반대로, 이 나라는 대박만을 꿈꾸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바보가 되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회, 남녀노소가 이구동성으로 ‘대박’을 말하는 사회, 대학생이 로또복권을 사는 사회, 그런 사회에 진정한 꿈이 있을까?

  안회가 살던 시대 사람들도 모두 부귀를 원했다. 그런데 안회의 꿈은 그런 세인들의 꿈과 달랐다. 그는 순임금 같은 성인이 되기를 바라서 ‘희순(希舜)’으로 자신의 목표를 삼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그 길을 감으로써 그의 즐거움을 찾았다. 조선 선비 중에 안회처럼 되기를 희망하여 이름을 ‘희안(希顔)’이라 지은 이들이 있었다. 즉 ‘희순’은 안회의 꿈이었고, ‘희안’은 조선 선비의 꿈이었다. 현대인이 로또복권에 당첨되어 대박을 터뜨리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안회가 즐거워한 것을 따라 사는 것이 조선 선비들의 꿈이었다.

  위에서 보았듯이, 공자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그가 부귀보다 좋아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열 집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도 나처럼 충신(忠信)한 사람이 있지만, 나처럼 배우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였으며, 또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안 사람이 아니고,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보면, 공자는 옛 것을 좋아했고 부지런히 배우길 좋아했다. 옛 것은 인간의 축적된 지혜다. 달리 말하면 진리다. 그것을 부지런히 찾고 배우는 것이 학문이다. 그 내용에는 예악(禮樂)도 있고, 시서(詩書)도 있고, 역(易)도 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도다. 즉 공자는 돈 버는 것만을 추구하며 사는 삶을 버리고, 도를 구하는 삶을 추구한 것이다. 이 도는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길이다. 골목길이 큰 길로 만나듯, 길은 소통과 융합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좋아했던 것이고, 안회가 발견한 목표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도’와 ‘돈’을 말한다. 점 하나로 ‘님’도 되고 ‘남’도 된다는 노랫말처럼, 이 역시 받침 하나로 그 의미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성인이 출현하고 경전이 만들어진 뒤로 인생의 최고 목표는 도에 있었다. 그래서 구도자가 어느 세상에나 있었으며, 시대가 암울할 적에는 더욱 선명히 도덕성을 드러내는 도학자가 있었다. 도를 구하는 자가 최고의 대우를 받는 세상이 바로 조선시대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가 바로 살맛나는 세상이었다.

  공자는 돈에만 가치를 두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름으로써 그 많은 즐거움이 그의 길에 있었다. 담장 앞에 서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안회는 자기의 목표를 찾고 그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빈한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즐거움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길을 갔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생의 즐거움은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 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갈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이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돈’이라는 마귀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미얀마는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이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은 진정으로 부처님을 따르며 살기 때문에 행복지수가 세계 3위라고 한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그런데도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가 여전히 난무하며, 로또복권 타령에 대박이나 외치고 있다. 정신적으로 매우 가난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미얀마 사람들보다 무엇이 행복한가?

  ‘요즘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처럼 불행한가? 답은 간단하다. 돈만 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 나의 길을 가자. 공자가 가던 길, 안회가 가던 길, 조선 선비가 가던 길을 보자. 그러면 그 속에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즐거움은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는 데서 생기며, 도는 옛 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배우는 데서 보인다.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글쓴이 / 최석기

*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장

* 주요저서
 『성호 이익의 시경학』,『남명과 지리산』
 『한국경학가사전』,『유교경전과 경학』
 『송원시대 학맥과 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