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영계가 천둥벌거숭이로 뛰어 놀던 70년대 후반의 일이다.



방학이면 서울에 사는 친척아이들이 촌구석에 놀러 오곤 했다.



사시사철 누런 콧물을 달고 다니며, 하두 팔로 콧물을 훔쳐서 소매끝이 반질반질했던 영계와 동네 촌놈들이 보기에

서울아이들은 먼나라 왕족들 같았다.



하루종일 흙더미 속에서 구슬치기, 땅따먹기등으로 세월을 보내느라 겨울이면 손이 트고 쩍쩍갈라지고, 목에는

시커먼 땟국물이 엉켜있던 영계와 촌놈들에 비교하면, 품질 좋은 로션과 크림으로 관리하고 흙장난 따위는

하지않던 서울 아이들의 뽀샤시한 손등과 매끈한 목덜미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어쩜 말들도 그리 곱고 사근사근하게 하던지...말끝마다 쌍욕을 달고 살던  영계와 친구들이 보기에 서울 아이들이

이랬니? 저랬니? ...하던 말투는 TV에서 이쁜 탤런트 언니들이 쓰던 말투 그대로였다.



서울 아이들도 내심 촌놈들 뭉쳐 있는 곳에 어울려 놀고싶을때도 왜 없었겠느냐만, 그놈들과 어울리다 뭐라도 묻을것

같았는지 항상 지들끼리 사내아이, 계집아이 어울려서 얌전하게만 놀았다. 그당시 장난감이라곤 신고 있던 고무신을

벗어서 물에 띄우면 배, 돌맹이 싣고 끌면 트럭이던 영계와 친구들에게 서울 아이들은 별별 고급스럽고 처음 보는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았었다.



TBC가 지방에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마징가Z 밖에는 모르던 촌놈들 앞에서 서울아이들은 전자인간 케산,

그레이트 마징가, 우주소년 짱가를 들먹이면서 우리들의 마징가Z가 얼마나 초라한지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들은 마징가Z가 깨지면 지구가 망하는줄 알았지만, 서울 아이들은 그외에도 든든한 지구방위군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서울 아이이들중 남자애들한테 느끼는 감정은 뭐랄까.....부잣집 도련님에게 맨날 당하면서 질투와 미움을 느끼지만

잠재적으로 두려움을 가진 그런것이라고나 할까......여자아이들한테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특별했다.


넘봐서는 안 될.....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지닌 주인집 아가씨를 남몰래 훔쳐보는 마당쇠와 같다고나 할까?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하얀 타이즈를 갖춰 입은 주인집 아씨랑 눈이라도 한 번 마주치면, 그 마당쇠 그날밤 잠을 못 잤다.



서울아이들에 대한 동경은 질풍노도의 내 10대 시절까지 이어졌고......



어쩌다보니 서울로 대학을 오게되어, 나도 드디어 왕자님과 공주님만 사실것 같은 서울에 입성을 했더니..........


























만주족, 여진족, 흑수말갈같이 생긴 인간들 천지였다.








나는 머리 디립다 크고, 여드름 나고, 머리 떡지고, 오랑캐스럽게 생긴 녀석을 볼때마다 고향을 물었고,

그중에 아주 많은 놈들이 서울 토박이라는 둥.....













중요한 것은 밭이 아니라 씨였던 것이다.







내가 촌구석에서 나고 자라서 그렇게 생겨먹은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씨였단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