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직장의 환경이 바뀐 관계로 몇년동안 입지 않던 양복을 매일 입고 다닌다.

그러다보니 여러 번거로운 일들이 있지만 가장 귀찮은것은 와이셔츠를 다려야 하는 문제다.


예전부터 다림질은 나의 몫이었다. 언감생심 마눌님이 내 셔츠를 다려줄거라곤 꿈도 안꿨다.


오늘아침도 쭈그리고 앉아서 꾸역꾸역 셔츠를 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내 셔츠를 다리고 있는데, 출근준비에 분주하던 마눌이 자기 블라우스 하나를
휙~ 던지고 간다.


"다리는 김에 내 블라우스도 다려줘!"



그 순간, 머리속에 온갖 치사한 계산이 스쳐 지나간다.


'제길, 다른 집은 마눌이 남편 셔츠를 다려준다는데...'

'제길, 돈은 내가 더 많이 버는데...'

'제길, 회사 나가면 내가 어떤 사람인데...'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마눌 회사가 나보다 멀어서 출근준비가 더 바쁘다.

그리고 그동안 살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이것은 내가 수행할 수 밖에 없는 미션이다.

마눌이 시켜서 안하고 편하게 넘어간 일이 그동안 단 하나라도 있었던가?



어쩔수 없이 꾸역꾸역 내 셔츠를 다린 다음에 마눌의 블라우스를 꼼꼼하게 다려준다.


마눌이 그제서야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옆에 와서 슬그머니 말을 건넨다.


"내 블라우스는 대충 다려도 돼, 너무 꼼꼼하게 하지마"




오호라~~


이럴때 되받아 쳐주는거다.



"나는 구겨진 셔츠를 입어도 되지만, 마눌님이 구겨진 블라우스를 입어서야 안되지,

 난 내 마눌이 후줄근하게 다니는 꼴은 내 자존심이 허락 못해!!

 내 셔츠보다 훨씬 정성들여 다릴거야"



마눌이 살짝 감동을 먹었는지 안하던 소리를 한다.


"**야(딸이름) 너도 커서 네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해야 해, 알았지?"





그동안 살면서 "네 아빠같은 남자 절대 만나면 안돼"라는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엄마가 아빠를 칭찬하는 말은 처음 듣는 딸도 어리둥절하다.




하아...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이왕 수행할 수 밖에 없는 미션이라서 립서비스도 곁들였을 뿐인데.....





이왕 해야할 일이라면 말도 곱게 하자.


가정이 평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