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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남녀 한 쌍이 있습니다. 같은 분야에 있는 지라, 이래 저래 얼굴을 익힌 지는 몇 년 되지만, 서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되는 사이죠. 남자도 여자도 대인관계가 지극히 편협하고 폐쇄적인 성격이라 서로 인연을 쌓을 일이 없었던 것이죠.

그러다 일이 생겼습니다. 내년을 목표로 남자가 무엇인가 계획하는 일이 있었는데, 공적으로 여자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하게 됐습니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는 다른 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뒤 여자는 앞 여자와 달리, 화통한 성격에 주변의 관계를 모으고 어르는 사람이었죠. 평소 사회성이 너무 부족하다 싶어 앞 여자를 이러저리 챙겨주다가, 제가 하는 일을 듣고서 추천을 하게 되었죠. 남자 역시 뒤 여자와 일을 한 적이 있었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여자 역시 자신이 일을 할 때 종종 남자의 의견을 경청할 정도로 남자를 신뢰했죠.

남자는 여자에게 전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보기에 매력적었거든요. 뭐랄까 남자는 '동족의 냄새'를 맡는데 탁월한 편입니다.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포착된 사람을 놓지지 않으려 하지요. 이번에 억지로 연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고 믿으며.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동족을 필사적으로 찾게 된다고 하는 게 정확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적인 일도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 다리도 놓아 주었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걸릴 것이 없었습니다. 일 얘기를 하고, 저녁을 먹고, 맥주를 먹으면 되니까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죠. 같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서로에 대해서 등등.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문득 여자가 말합니다. 사귀는 남자가 있었고, 결혼을 할 지도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던 것이 불과 한달 전이었는데 말이죠. 그 동안 너무 놀았다고,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사실이 그랬습니다. 일을 하기 시작할 무렵 잠깐 반짝했다가, 비슷한 또래들이 달려나갈 때, 오히려 잠수하고 침묵했거든요. 매우 오랫동안. 그것이 못내 못마땅하고 답답했던 다른 여자가 저를 소개해 주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징조가 좋았죠. 서로 얘기를 왁자지껄 하지는 않지만, 이어졌다 끊어졌다 리듬을 타며 조곤조곤 이야기 했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 한국에 돌아가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여자는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주변을 정리하고 심기일전 하는 마당에, 변화가 필요했겠죠. 여자는 배우다가 실패했다고 합니다. 쉬이 넘어지는 바람에, 두 번 다시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다시 배우고 싶다는 겁니다.

"아, 일 이주 한 시간씩만 타면 되는데."

남자는 말했죠. 그리고 느꼈습니다. 그것이 신호라고. 자전거는 혼자서 배울 수 없는 법, 누가 잡아줘야 하죠. 그런데,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남자는 간신히 눌렀습니다...왜 그랬을까요, 그는.